세계적 거장 이우환 화백, 부산을 그리다.
국제신문 뉴스&이슈 구독하기 국제신문 근교산&기획특집 구독하기 -------------------------------------------------------------------- 거장의 작업은 더뎠다 4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설치작업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보통의 조각품은 작업실에서 완성해 현장에 놓는다면, 그에게는 작품이 놓이는 장소가 바로 작업실이다 또 현장이다 철판과 돌을 재료로 공간과 장소적 특성, 심지어 공기와도 협의해서 만든다는 설명이 와 닿았다 자연이라는 캔버스를 마주놓고 두 시간 넘게 그림을 그린 거장은, 철판과 돌이 최적의 위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뒤에야 비로소 미소를 띠었다 부산시립미술관(해운대구 우동)이 한국이 배출한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77) 화백의 조각작품('관계항' 시리즈)을 부산 처음으로 미술관 야외공간에 장기 전시한다 작품설치를 위해 이 화백이 이날 오전 시립미술관에 들렀다 석 달 전 프랑스 출장길에서 만났을 때(본지 지난해 10월 24일 자 20면 보도)처럼 수수한 차림이었다 *부산 애정 실린 작품 설치 일본, 유럽, 미국 등지를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는 작품설치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설치를 결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학창시절(경남중)을 부산에서 보낸 나로서는 여기가 고향 같고, 마음이 쓰인다 미술관 측과 여러 지인이 수년 동안 얘기했는데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부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표현이다 이번 작품은 철판 넉 장과 돌 네 개로 이루어진다 겹쳐진 철판을 사이에 두고 네 모퉁이에서 돌덩어리가 마주 본 형태다 철판은 가로 180㎝, 세로 180㎝, 두께 5㎝로 무게는 각 1t 돌은 서울 인근에서 구했다 지름 80㎝~1m 작가와 함께 돌을 구하러 다닌 부산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는 "작가가 구상한 크기에 딱 맞는 돌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떤 형태를 자아내서도 안 되고 무미건조해도 안 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번 작품은 디스커션(discussion긿회의)으로 붙였다 돌은 곧 인간이다 4자 회담 비슷하다 철판 네 개가 어긋나게 겹쳐질 텐데, 조금씩 생각이 다르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데, 그 자체가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 " 하지만 작가는 "문화는 현실과는 차원을 달리해서 다른 측면을 보게 하는 것이다 현실과 바로 직결 안 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대중은 어려울 수 있지만, 예술은 상황과 시대를 초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에 대한 1차원적 접근을 경계하는 소리였다 *열정이 넘치는 작업 현장 짧은 인터뷰를 끝낸 후 오전 10시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장정 6~7명이 함께했다 먼저 그는 나무 막대 몇 개를 집어들고 돌과 철판이 놓을 위치를 잡았다 야외공간에 놓일 장소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은 시작됐다 작가가 신호하자, 크레인이 철판을 옮겼다 원하는 곳과 차이가 나자 작가가 직접 쇠 지렛대를 들고 철판을 옮겼다 이를 앙다문 거장의 이마에 땀이 뱄다 "어거지로 하면 안 돼 " 다 놓았는가 싶었는데, 철판의 녹슨 무늬에 따라 다시 각도를 바꿨다 철판 네 개를 옮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날 추운 날씨였지만, 작가는 점퍼를 벗고 목도리를 풀었다 형태가 약간씩 다른 돌을 놓기는 더 까다로웠지만, 돌을 어르고 매만지면서 작업을 완성했다 이때가 낮 12시 20분 작가는 "만족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작품과 장소가 맞다 처음에는 내 의도를 몰라 애매해하던 사람들이 일이 진행되면서 순조롭게 호흡을 맞췄다"고 말했다 왜 이 작품을 구상했을까 "부산은 열린 도시다 그리고 항구다 내 생각, 네 생각 강요하지 말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같이 갈 수 있는 곳, 토론하고 회의할 줄 아는 곳이 됐으면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애착이 힘이 되고 꼬투리가 돼 멀리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도시를 기원한다 "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철판과 산업사회 이전의 어머니(자연)인 돌을 엮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작가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