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뿌리고 부모도 협박…‘n번방’ 닮아가는 사채 추심 / KBS 2023.02.21.
[앵커] 높은 금리, 집요한 추심으로 악명이 높은 '사채', 그런데 여기에 성착취가 결합한 '성착취 추심'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이자를 요구하다 이를 못 갚으면 채무자의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하거나 '진짜' 성착취 영상을 받아낸 뒤 지인의 SNS 등으로 무차별 유포하는 겁니다 최은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여성 김 모 씨 지난해 초, 급하게 대출을 알아봤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생활비로, 아니면 아빠 병원비 이렇게 해서 썼던 것 같아요 은행에서는 이제 조회를 해 보니까 안 된다고 하셔서 "] 결국 인터넷 대출중개 사이트에 문의를 넣게 됐습니다 '합법 등록 업체'라는 곳 여러 군데서 연락이 왔고 그 중 한 곳에서 20만 원을 빌렸습니다 무담보인 대신 지인 연락처를 요구했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지인들 연락처가 필요하다면서 지인 집 주소, 지인 이름, 직장명까지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단 일주일 만에 갚을 돈이 두 배가 됐습니다 다급한 맘에 다른 업체에서도 돈을 빌려 일부를 상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채업자/음성변조 : "연체료 시간당 20만 원씩은 보내셔야 돼요 이자 안 보내시면 직장 그냥 잘리게 하겠습니다 "] 터무니없는 이율의 빚 독촉과 협박, 지인들에게까지 전가됐는데 대출 당시 요구했던 연락처가 바로 여기에 이용됐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상환) 시간이 지나면 '한 시간에 15만 원, 20만 원 더 올리겠다' 직장 동료한테 욕까지 하면서 '이 X이 돈을 빌렸는데 안 갚아서' "] 결국 직장까지 그만뒀지만 갚을 돈은 계속 불어났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김 씨에게 사채업자들은 성착취물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텔레그램으로 (나체) 영상 찍어서 보내 주면 (상환) 기한 늦춰 주겠다' 동생 초등학교까지 찾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두려움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 하지만 기한 연장 등을 미끼로 계속해서 성착취의 강도만 높아져 갔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영상을 거울에 대고 찍었는데 그건 안 되고, ○○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니까 또 해서 올렸는데 그 방에 아예 폭파가 된 거죠 1분 안에 방이 폭파되어서 "] 가족들의 일상까지도 '지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 씨 아버지/음성변조 : "'영상을 가지고,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모티콘) 웃음 두 개 소름 끼쳤어요 영상을 갖고 있으니까 돈을 달라는 거죠 (사채업자에게) '영상 누구한테 있는데?' 그랬더니 자기 친구한테 있대요 영상 하나 가지고, 영상을 다 돌려 본 거예요 "]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처리 결과는 '무혐의' 종결이었습니다 [김○○ 씨 아버지/음성변조 : "(경찰이) 본인이 자발적으로 해서 보낸 거 아니냐 누가 이걸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 '성착취 추심'은 성별을 가리지 않습니다 20대 남성 김 모 씨 SNS 계정을 담보로 15만 원을 빌린 뒤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김○○ 씨/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두 시간, 세 시간에 걸쳐서 연속으로 (전화가) 120통 찍혀 있어 가지고, 그걸 안 받으면 지인들한테 한 명씩 한 명씩 똑같이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죽이겠다 "] 나체 사진을 보내면 멈추겠단 말에 허겁지겁 사진을 보냈지만 사채업자들은 김 씨의 신상과 사진을 넣은 '지명수배' 전단까지 만들었고 이를 지인들 SNS에 뿌려댔습니다 [김○○ 씨/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SNS) '팔로우' 돼 있는 지인들 '태그'해서 2시까지 (돈) 안 보내면 유포한다 했는데, 전부 다 유포가 된 상태였어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 KBS가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한 '성착취 추심' 피해자만 수십 명에 이릅니다 [공정식/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졌을 때 피해가 더 광역화되고 또는 장기화된다는 점 때문에,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 "] 고리사채와 성착취, 이중의 고통으로 피해자들을 옭아매는 이 범죄는 여러 일당이 조직적으로 공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촬영기자:권준용 최석규/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김지훈 [앵커] 이 문제 취재한 최은진 기자와 이야기를 더 나눠보겠습니다 사례를 보니 '15만 원, 20만 원' 그야말로 소액 대출에서 시작한 건데 그만큼 '궁박한' 사정을 이용한 거죠? [기자] 네, 아주 가벼운 일반적인 소액 대출인 척 돈을 빌려주고는 치밀하게, 단계적으로 성착취 올가미를 씌우는 수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 채무자가 합법 금융인 줄 알고 A라는 업체에서 돈을 빌립니다 이자는 빠르게 불어날 테고 갚으라는 독촉이 들어오겠죠? 제 때 못 갚으면 다음 제안으로 넘어갑니다 '내가 다른 대출업체 또 소개시켜 줄테니 일단 거기서라도 돈을 빌려서 우리 이자부터 갚아!' 그렇게 돌려막기가 시작되고 그 때부터는 괴롭히는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닌 상황이 됩니다 정신 없이 압박 당하는 상태에서 '이자 좀 깎아줄까? 상환기간 늦춰줄까?' 이런 제안이 들어오고 그 빌미로 성착취 영상, 사진 등을 요구하는 건데요 한 번이라도 이 요구에 응하면 협박의 강도는 더 높아지고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는 겁니다 [앵커] N번방이 연상되네요 앞서 보니까 수사도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기자] 네, 수사망을 피해가는 것 역시 N번방과 닮은 수법입니다 사채업자들은 일단 추적이 쉽지 않은 텔레그램으로 성착취 자료를 받아갑니다 그리고는 그 방을 소위 '폭파' 없애버리고 계정도 탈퇴합니다 이른바 대포폰과 대포통장 이런 것도 당연히 사용을 할 테고요 [앵커] 단서 될 만한 거 다 없앤다는 얘긴데, 우리 취재 과정에서 뭐 좀 실마리가 잡힌 건 없을까요? [기자] 네, 눈에 띄는 이름들이 몇가지 공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물론 실명은 아니겠지만 '하강민, 백팀장, 최도하' 이런 이름들이 SNS 등에서 피해자들을 협박했습니다 여러 사건에서 중복 등장한 명칭들입니다 성착취 영상이나 사진을 받아내고 공유하는 과정 또 '이자 돌려막기'를 하는 과정, 이 모든 과정에 이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 있습니다 [앵커] 조직적인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면 '신고 들어오면 움직이는' 그런 수사 방식으론 안 될 거 같아요? [기자] 지금까지 저희 취재진이 직접 접촉하거나 확인한 피해자만 수십 명입니다 '불법 추심' 피해자들이 모인 인터넷카페 회원도 6백명이 넘는데 거기에도 추가적인 '성착취 추심' 피해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전체적인 피해 규모를 파악 못할 뿐 아니라 법리 적용도 허술한 상황입니다 성착취물을 매개로 한 불법 추심이 적발돼도 주로 대부업법 위반으로 처벌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범죄는 불법 사금융에 성폭력, 성착취, 스토킹 등 여러 강력 범죄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법 적용을 넓히거나 새로운 처벌기준 만드는 것도 시급해 보이고 서민들 노린 범죄인 만큼 전세사기 때처럼 전담수사팀 만드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앵커] 금융 소비자들 입장에서 주의할 점은 없을까요? [기자] 네, 우선 지인 연락처를 요구하는 곳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용해선 안됩니다 대출심사를 결정할 때 신용조회를 하는데 지인이나 가족 연락처는 필요한 정보가 아닙니다 만약 이걸 요구한다면 결국은 협박용으로 악용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입니다 또 이런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면 숨겨선 안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외부에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숨길수록 지인 협박이나 협박 강도가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인데요 휴대전화나 메신저 아이디 등을 바꿔 불법 추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또 거래내역과 증빙자료를 확보해 금융감독원이나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신고하면 법률 서비스를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영상편집:박은주 ▣ KBS 기사 원문보기 : ▣ 제보 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홈페이지 : ◇ 이메일 : kbs1234@kbs co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