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6월 3일 안산호수중앙교회 황재국담임목사 설교말씀 『세가지 시험』(마4:1-11)
『세 가지 시험』 인생에서 순간순간 다가오는 질문이 있다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identity)’을 묻는 질문입니다. 둘째는 그 정체성에 따라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입니다. 셋째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하는 “삶의 목적”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 세 가지는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드는 피할 수 없는 궁극적인 관심사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해답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그 삶은 의미가 없고 무가치한 인생을 살다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이 확고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삶의 태도와 기준을 바르게 지니고 있지 않다면 마치 사용법을 모르는 물건을 대하듯 답답하고 불안한 일입니다. 또한 확고한 정체성과 바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삶의 목적이 잘못되었다면 마치 아군의 진지에 떨어진 포탄처럼 진지할수록 피해가 크고 그 종말이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인생에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듯이 삶의 목적 즉 방향이 잘못되면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절망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니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도전 중에 중요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로 달려가서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시험을 거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사탄의 간교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조건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네가 만일... 이어든”다시 말해 어떤 조건하에서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이 성립된다는 말입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이어서 나오는 “이 돌들이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돌들이 떡덩이가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마귀가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흔드는 말입니다. 이것을 일반화하면 오랫동안 인류를 무력하게 만든 사탄의 전략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곧 사탄이 우리를 속이고 길들여 온 전략입니다. 바로 “한 사람의 능력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경제력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마귀의 그릇된 잣대 자체를 거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예수님은 먼저 “기록하였으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근거를 예수님 자신의 형편이나 능력에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찰스·스윈돌”목사는 인생에서 “삶의 태도”가 중요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정체성’인식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은 결국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태도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어서 두 번째로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며 기록하였으되”(마5:6)라고 시험을 던지자 예수님은 “또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5:7)고 물리치십니다. 마지막으로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마4:8) 인생의 목적을 흔드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넓은 문이 아닌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제시한 길은 너무나 쉽고 빠른 길이었습니다.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하지만 주님은 그 일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길에 십자가 지실 것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세 번씩이나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제 당신도 이런 시험이 올 때 어느 길을 선택할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