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임진왜란 2부작, 1편 8천 조선군,16만 대군과 맞서다 / KBS 2006.6.23 방송
1592년 4월 13일(양력 5월 23일) 선조 25년 임진왜란 7년 전쟁이 시작됐다 - 개전 초기, 연전연패 400년 전의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장면 중의 하나였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은 드디어 부산포를 침략하고 조선은 불과 20일 만에 수도를 빼앗기고 만다 오랜 준비 끝에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달리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조정 관리 중 누구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과 제승방략을 들고나온 조선의 느슨한 방어체계, 일본에 비해 열악한 국력, 일본의 신무기인 조총이 바로 패전의 원인이었다 - 전쟁 중 선조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책, 어떻게 다른가? 히데요시는 치밀한 계획으로 조선을 침략한 후, 회유책을 통해 조선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려 했다 한편 선조는 끊임없이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 백성들에게 있어 구원병에게 조달하는 전쟁물자는 커다란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조정은 전쟁물자를 바치면 신분을 상승시켜주는 정책을 사용했고, 이는 조선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 대신들은 아무런 대비책이 없었다 국방에 대한 무관심과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조정의 대신들 의,승병들의 활약으로 조금씩 전세의 역전을 꾀하던 조선군은 제1차 진주성 전투를 통해 결정적인 역전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던 조선은 이미 폐허가 되고 말았는데 고작 8천의 관군으로 백년 내전 경험이 있는 일본군 16만 대군을 맞아야 했던 조선군, 그것은 이미 예고된 재앙이었다 - 조선의 ‘잇기’ 들이 활약하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조선을 다시 일으키게 되는 주역이 있었으니 ‘잇기’ 라고 불렸던 조선의 의병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왜군과 맞서 싸운 의병들 홍의장군 곽재우, 김천일, 조헌과 칠백의사 등, 이들이 활약했던 현장으로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 본다 HD역사스페셜 50회 – 임진왜란 2부작, 1편 8천 조선군 16만 대군과 맞서다 (2006 6 23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