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0 주일 오전 9시예배(종려주일) / “나귀 새끼를 타신 만왕의 왕, 그 기이한 조합(調合)”  (막11:1-10)

2022. 4. 10 주일 오전 9시예배(종려주일) / “나귀 새끼를 타신 만왕의 왕, 그 기이한 조합(調合)” (막11:1-10)

(예배순서) * 묵도 * 사도신경 * 찬송 - 23장 * 기도 - 이진욱 강도사 / 정종섭 장로 * 설교 -“나귀 새끼를 타신 만왕의 왕, 그 기이한 조합(調合)” (막11:1-10) 예루살렘 성문에서 들려오는 찬송(讚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 찬송 - 151장 * 헌금 - 우리은행 1005-103-778139 (은좌교회) * 광고 고난과 부활 (1) “거기 너 있었는가” (Were You There?) “나귀 새끼를 타신 만왕의 왕, 그 기이한 조합(調合)” (막11:1-10) 예루살렘 성문에서 들려오는 찬송(讚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33년의 생애를 중요성에 따라 어떤 부분은 생략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집중하여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거의 40% 정도의 분량이 마지막 한 주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고, 33년의 생애를 사신 목적이 이 마지막 한 주간을 위해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일생의 하이라이트가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입성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들어가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온 유대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예수님이 아직 사람이 타보지 않은 아주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여기에는 자신과 동행하고 있는 제자들과 그곳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하시는 분명한 의도하심이 있습니다 1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만왕의 왕 (1) 나귀 새끼를 타신 만왕의 왕 a 첫 번째로, 구약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나귀 새끼를 타신 왕’이라는 말씀을 성취하심으로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2-6절은 예수님이 자신이 타실 나귀 새끼를 준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두 제자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시며 주인이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b 무리해 보이는 명령을 하시고 그 주인이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구약성경이 예언해 놓은 왕이시며, 자신을 왕으로 정말 믿고 있다면 이에 마땅한 반응은 순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2) 제자들의 무지(無知) a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그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수많은 능력과 권세를 다 봤지만, 그 능력과 권세에만 집중하고 그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께는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 능력과 권세를 예수님의 존재와 연결하는 데에는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b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오직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얻게 되는 유익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기대하는 유익이 생기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 주님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그 분의 선하신 성품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c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기 직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만왕의 왕이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해서 친히 죽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믿으신다면, 그 왕에게 합당한 순종과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2 환호하고 찬양하는 무리들 (1) 내용은 맞지만 마음은 틀린 찬양 a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며 수많은 무리들이 환호하고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이 행하셨던 많은 기적들이 기억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왕으로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면서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b 그 헛된 욕망과 무지를 다 알고 계셨지만, 예수님은 부족한 찬양마저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21:15절을 보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노하여 무지한 사람들이 저렇게 찬양하는 것을 왜 그냥 놔둘 수 있냐고 시비를 겁니다 c 그때 예수님께서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21:16)”고 대답하십니다 지금 군중들과 어린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부르는 그 호산나 찬양이 정당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시편에 나오는 호산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메시아라고 분명히 밝히시는 것입니다 (2) 부족한 찬양이라도 받기 원하셨던 만왕의 왕 a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 백성들이 무지한 상태로 드리는 부족한 찬양이라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호산나 찬양을 하지 않았다면 돌맹이라도 들어서 자신을 찬양하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40) ” b 예수님은 며칠 후면 십자가 위에서 참혹하게 죽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제자들이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원했던 모습도, 군중들이 환호하고 찬양하며 기대했던 모습도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기대가 다 깨어지는 것 같은 순간에도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만왕의 왕이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c 2022년 종려주일, 우리 역시 주님의 이 심정을 느끼며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내 마음이 진실하든지 진실하지 않든지 예수님은 나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만왕의 왕이시라는 사실은 내가 어떤 형편 가운데 있든지 변하지 않습니다 ----------------------------------------------------------------------------------------------------- 사랑하는 은좌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은 예수님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조합입니다 예수님은 불가능해 보이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조합을 스스로 자신의 몸에 채우고, 우리 역시 이 기이한 조합을 이루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 나의 메시아, 나의 왕으로 이미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분의 자녀들이 되었고,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아가는 그 분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게 우리의 영광스러운 신분이지만 이 땅을 살아가다보면 그 영광스러운 신분과는 전혀 조합이 되지 않는 삶의 형편을 맞이할 때가 참 많습니다 내일 새벽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주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조합을 계속해서 보게 될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끝에 영광스러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던 그 기이한 조합이 이내 그 분에게 걸맞는 조합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라가기에, 주님이 경험한 것을 우리 역시 경험하고 지금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기이한 조합이 성도의 신분에 걸맞는 조합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신다면 그 어떤 순간에도 찬양을 잃어버리지 말고, 찬송과 감사와 감격과 소망이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영혼의 행복을 나누는 은좌교회 담임목사 오 재 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