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지원한 상하이의 인삼 상점 [인삼, 독립의 뿌리가 되다] /YTN korean

독립운동을 지원한 상하이의 인삼 상점 [인삼, 독립의 뿌리가 되다] /YTN korean

명약이라 불렸던 한반도의 특산물 고려 인삼은 높은 위상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더했습니다 과연 생명을 살리던 약은 어떻게 나라를 살리는 약으로 쓰일 수 있었던 것일까요 독립 운동이 가지를 뻗을 수 있도록 든든한 뿌리가 되어준 인삼! 그 숨겨진 이야기를 추적해봅니다 [해설] 당시 대부분의 한인 인삼 상은 손님을 직접 찾아다니는 행상이었는데요 정제형처럼 한 지역을 거점 삼아 상점을 차리고 대규모로 인삼을 취급하던 독립운동가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 장 종 섭 /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상해지부] "여기가 (옛 주소 상) 하비로 339번지입니다 김문공사가 있던 자리입니다 " [해설] 지금도 상하이 중심 도로이자 쇼핑거리인 화이하이중루! 과거 이곳에는 김문공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김문공사는 김시문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잡화점이었습니다 고려인삼을 주축으로 다양한 품목을 취급해 큰돈을 벌었던 그는 김문공사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 한 시 준 /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김시문이라는 분이 했던 김문공사 같은 경우 제일 처음에 잡화상으로 시작했을 때 백범 김구 선생이 김시문한테 와서 '고려 인삼을 취급하면 좋겠다'라고 해서 고려 인삼을 취급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번 상당한 자금이 임시정부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 [해설]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김시문은 독립신문이 내부 사정으로 발행이 어려워지자 집행위원이 되어 운영권을 위임받습니다 비록 1925년 발행된 187호부터 190호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김시문 덕에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상하이에 있던 또 한 곳의 인삼 판매점인 한진교의 해송양행 한진교는 해송양행을 운영하는 한편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는 등 활약했습니다 특히 인성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큰 힘을 보탰다는 한진교! 상하이 인성학교는 한인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애국심과 독립의지를 키우는 요람이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 한 시 준 /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1919년에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릴 때 김규식 박사가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을 하려고 가잖아요 그때 김규식 박사에게 상당한 여비를 마련해준 것도 해송양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해설] 파리 강화회의는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회의입니다 식민지 문제도 논의될 예정이었기에 우리는 꼭 참석해야만 했습니다 이때, 한진교는 여비를 마련하여 김규식이 파리로 떠날 수 있게 합니다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대표단의 회의 참석은 불발됐지만 독립운동의 거점을 유럽으로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한진교의 후손을 미국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광복 후 조국에 돌아와 발전하는 나라를 직접 보았다는 한진교! 애국심 계승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 "여기가 할아버지(한진교), 여기가 김철 지사님 " 가족이 보고 듣고 느꼈던 독립운동가 한진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인터뷰 : 이 지 준 / 한진교의 후손] "할아버지(한진교)께서 개성 인삼 상인들에게 독립운동에 대한 취지를 말씀하시고 그 결과 그분들이 돈을 받지 않고 외상으로 막대한 양의 인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팔아서 남은 원금을 (개성 인삼 상인에게) 갚고 나머지 금액을 독립군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 [인터뷰 : 이 지 호 / 한진교의 후손] "해송양행에 군자금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독립운동하는 분들이 가면 바로 준비가 안 되니까 며칠씩 그곳에서 기거하며 기다리는 거예요 거기 마당도 쓸고 애도 봐주고 이러면서 기다리다가 준비되면 그 군자금을 바로 가져다드렸다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인삼 #독립운동 #상하이 #김문공사 #김시문 #한진교 #해송양행 ▣ YTN korean 유튜브 채널구독: ▶ 모바일 다시보기 : ▶ Facebook : ▶ Naver TV : [전세계 750만 코리안 네트워크 / YTN kor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