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9주년 순교지 탐방,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C채널 매거진 굿데이] 2019년 6월 28일 C채널 뉴스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모두가 외면하는 나환자들과 평생을 함께했습니다 6 25 전쟁 당시에는 피난길에 오르지 않고 환우들의 곁을 지키다 순교했는데요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를 변현준 기자가 전합니다 ‘성경에는 원수를 용서하라고 나와 있지 않아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나와있단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겠다는 결정에, 분노하는 딸에게 손양원 목사가 남긴 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용서의 계명을 삶으로 실천한 손양원 목사는 세상에서 외면 받는 한센병자들의 영원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600여 명의 한센병자들을 돌보던 감만동 교회에서, 첫 사역을 시작한 손양원 목사 이후 애양원 교회로 부임하고 순교하기까지 손양원 목사의 모든 삶은 외롭던 한센병자들과 함께였습니다 피고름과 땀으로 가득한 방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고, 잠자리도 같이 하며 환우들의 병든 몸과 마음을 보살폈습니다 STD 변현준 기자 손양원 목사는 한센병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주고 그 들과 동고동락하며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의 극진한 보살핌에 차갑게 굳었던 한센병자들의 마음 속 서서히 스며들던 신앙 그러나 1950년 뜻하지 않은 6 25 전쟁이 발발합니다 파죽지세로 38선을 넘어 호남 일대까지 이른 북한군들 많은 교인들이 피난길에 올랐지만, 손양원 목사는 교회에 남아 ‘잘 죽자’는 내용의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일단 몸을 피하고 보자는 성도들의 간청에 손 목사는 결국 배에 오르지만, 배가 출발하자 이내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이유는 교회에 남아있는 천 여 명의 한센병자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는 것 INT 정종원 담임목사 / 애양원교회 당신께서 안가시면 못가니까 그 분들이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배에 한 번 타셨던 거죠 출발할 쯤 돼서 일부러 내리십니다 교회를 지키고 싶어 하시는 마음 그리고 피난조차도 못가는 그런 환우들 때문에 교회에 남으시기로 하셨죠 이미 그 때 남으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셨던 설교가 우리 잘 죽읍시다라고 설교를 하셨어요 이미 직감을 하신거죠 순교의 각오를 하시고 그렇게 손 목사는 환우들의 곁을 지키다, 1950년 9월 28일 총에 맞아 순교합니다 살 수 있음에도, 잘 죽는 것을 선택한 손양원 목사 모두가 피하는 가장 낮고 더러운 자리에서 평생을 보냈던 그의 삶은 순교 그 자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