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가이드]  "하나님의 방법으로 미움을 다스리는 방법"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 성경 속에 답이 있다

[신앙가이드] "하나님의 방법으로 미움을 다스리는 방법"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 성경 속에 답이 있다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링크 :    • [Vol.3] 묵상기도를 위한 CCM 피아노 연...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이런 문의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얼마 전에 감정 처리 방법에 대한 영상을 올려 주셨잖아요. 그런데 혹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올려주실 수 있나요?”라며 문의를 주셨습니다. 저는 몇 달 전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감정처리 방법”이란 제목으로 영상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 영상에서 다윗의 실제 사례를 들어 우리의 분노나 미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더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서 미움이 있을 때,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다루시기 원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미운 사람과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직장에서 만날 수도 있고, 혹은 교회에서, 가정에서 친구 가운데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안에 미움이 생길 때,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길 바라실까요? 여러분 우리가 이에 대해 나누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신앙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 미움과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목사님, 굳이 내가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 인간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데 굳이 내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것을 풀어야만 합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런 마음을 품는다고 해서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나무라시거나 벌하시지 않습니다. 이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약 우리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장성한 사람으로 성장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안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내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라, 내 감정을 하나님 편에 두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 안에 미움이나 분노, 시기와 질투 같은 마음이 올라 올 때, 하나님은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다루시기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의 이런 감정을 하나님께 올리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구요. 내가 갚아줄 것이라구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감정처리의 방법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 마음에 미움이나 분노, 시기나 질투가 올라 올 때, 이것을 “곱씹는 사람”이 아니라, 이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로마서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러분, 만약 내 마음에 미움이 올라 올 때, 이럴 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이런 방법을 통해 내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미움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그 사람이 너무 미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이 마음을 하나님께 올리니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 마음이 상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봉사하며 헌신했으나 제 마음에 서운함이 있습니다. 저를 알아주지 않아서 마음이 서운합니다. 하나님 이럴 때 제가 어찌해야 할까요?”라며 기도를 통해 내 감정을 그대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도 이렇지 않았습니까? 미운 감정과 화난 감정을 그대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지 않습니까? (시 109:4-10, 개정)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여러분 이것이 바로 다윗의 토설하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미움의 감정,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기도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내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기도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드린다면 영적인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내 문제가 하나님께로 “전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일이 내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것이 하나님 일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의 시절에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 때문에 제가 상해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저에게 상해를 입혔음에도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 사람을 고소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올라왔습니다. 이미 상해 진단서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 사람을 고소해서 감옥에 쳐 넣고 싶은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소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자꾸 로마서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구요.” 그러나 저의 분노와 미움은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손이 부르르 떨렸고, 피가 거꾸로 솟아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자꾸 말씀이 저를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기도하다가 통곡하며 울다가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험이냐? 제 곁에 누가 찾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제 가슴의 한 부분을 도려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여러분 마취를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부분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 마취 때문에 통증은 느껴지지 않지만, “쓱쓱” 살이 도려내지는 느낌은 있지 않습니까? 이와 똑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가슴의 한 부분을 수술 가위 같은 것으로 도려내더니 다시 봉합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느냐? 갑자기 저의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사라져 버린 것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감정을 추체하지 못하며 말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외쳤을 때, 보혜사 성령님이 이렇게 만져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내 감정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감정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내 감정과 마음을 내어 드릴 때, “내 기대”도 함께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내 감정을 드리면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 주신다고 했지? 그럼 하나님이 내 원수를 어떻게 갚아주시는지 보자”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드린다면, 이런 내 기대조차도 하나님께 다 내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내 기대나 내가 원하는 대로 원수를 갚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느냐?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원수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신다고 하니까, 내 마음이 시원하도록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식으로 원수를 갚아주시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드릴 때, 오히려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일하시는 경우가 많으냐? 도리어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에게 “그 사람을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품어 주면 안 되겠니”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이 싸울 때, 우리는 부모 된 입장에서 내 자녀들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품어주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박해하는 사울을 품어 버렸듯이(삼상 26:11), 하나님도 우리가 이렇게 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장성한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거부된다면 또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수 있느냐?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어떤 상황을 보여 주시며,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나와 그 사람을 분리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감정을 하나님께 드린 상황에서 계속 상대방이 악으로 다한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그 사람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심판도 내가 원하는 식의 심판이 아닐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내리는 심판일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내 미움의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내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내 기대”도 내려놓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