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미사일지침 해제하자마자 한국이 꺼낸 계획때문에 중국, 일본, 북한 심지어 러시아까지 단체로 멘붕온 상황
[광고 문의] 디씨멘터리 채널과 광고 협업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이메일로 문의해주세요 dcmentary@naver com 미국과 미사일지침 해제하자마자 한국이 꺼낸 계획때문에 중국, 일본, 북한 심지어 러시아까지 단체로 멘붕온 상황 #미국 #미사일지침 #현무 1978년 9월 26일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 참관장에 한 남자가 앉아있습니다 불과 2km가량 떨어진 섬끝자락에서 괴성을 내며 하늘로 떠오르는 미사일을 흐뭇한 듯 바라보고 있었죠 이 남자는 이 미사일이 앞으로 한국에게 어떤 부당함을 가져올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박정희와 백곰미사일, 한국에게 탄도미사일 제한이 생긴 결정적인 사건이었죠 한국이 최초로 개발한 이 백곰미사일은 미국의 지대공 미사일이었던 ‘나이키 허큘리스’를 참고해 만들었습니다 지대공, 즉 땅에서 공중을 공격하는 미사일을 지대지, 즉 땅에서 땅을 공격하기위해 만든 이 미사일의 겉모습은 나이키와 유사했지만 추진기관 등의 성능이 개량되어 나이키보다 40km 더 긴 180km의 사거리를 갖게 되었는데요 이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자체적으로 미사일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되었죠 박정희가 지시해 개발한 백곰미사일 성공에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건 미국입니다 공개발사 후 몇 일 뒤,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5시간가량 설명을 들었고 미 행정부가 파견한 7명의 사찰단은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에서 들여온 기술인지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와 일본 등 주변국들 역시도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두고 거품물고 반대했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미사일 개발은 핵개발과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놨고 소련은 “한국의 핵개발을 경고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한국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한국은 1979년 ‘사거리 180km 이내, 탄두중량 500kg 이내’를 골자로 하는 서한을 노재현 전 국방부장관이 주한미군에 보내면서 스스로 족쇄를 채워버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10/26 사태 등으로 국내정세가 어지러워지면서 백곰 개발도 멈췄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미사일 개발에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했던 인물은 전두환입니다 정통성이 부족했던 전두환은 미국에게 이쁨받고 싶은 욕심에 미사일 개발계획 자체를 폐기해버렸죠 그러나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했다가 ‘아웅산’ 사건을 겪은 뒤 입장을 급선회합니다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와 타격을 위한 미사일을 개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1985년 ‘현무-1’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완료하게 되죠 그러나 항상 한국의 미사일 개발에 발목을 잡았던 ‘한미 미사일 지침’이 불과 몇 일전 드디어 해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