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읽어주는 감성서신 #99] 섬김은 존중입니다
섬김은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존중과 함께 따라 오는 단어들이 존경, 공경, 그리고 경외함입니다. 존중이란 상대방을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존중이란 상대방의 진가를 인정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치에 맞도록 대우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예수님을 존중했습니다. 값진 옥합을 깨뜨려 섬겨 드릴만큼 귀한 분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존귀히 여긴 까닭에 값진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눈물과 함께 그녀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일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값진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을 낭비로 여겼습니다. 값진 옥합으로 예수님을 섬긴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값진 옥합으로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존중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존중은 존중을 낳습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 존중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 여인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 여인이 한 일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 가치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이 전파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중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비결입니다. 존중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멸시는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경멸은 경멸을 낳습니다. 사람을 멸시하면 사랑 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존중하면 사랑을 받게 됩니다. 아름다운 섬김의 뿌리에는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존중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작은 소자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소자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내게 대하여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존중은 부메랑과 같습니다. 존중하면 존중이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고 말씀하십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가정은 천국과 같습니다. 서로를 멸시하는 가정은 지옥과 같습니다. 천국의 문화는 존중의 문화입니다. 반면에 지옥의 문화는 멸시하는 문화입니다. 우리가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존중은 겸손에서 비롯됩니다. 상대방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허한 마음을 품을 때 상대방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존중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섬기는 것은 보상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존중에는 보상이 따라옵니다. 우리 함께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도록 합시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김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