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중비사]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온 궁녀 굴씨와 최회저
#조선궁중비사 #명나라 #궁녀 #굴씨 #최회저 #유저 #긴저 #청나라 #소현세자 #숙종 #예친왕 고려나 조선이 원이나 명나라에 공녀를 바친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에서 조선으로 온 궁녀와 환관들도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심양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는데 이때 소현세자는 명나라의 궁녀와 환관들을 데리고 귀국했습니다 귀국 당시 청나라에서 소현세자에게 준 선물이었는데 소현세자는 북경에 머물 당시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과 친교를 갖고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 문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담 샬은 청나라 황실에 부탁해 세자가 귀국할 때 세례받은 환관과 궁녀를 딸려 보낼 것을 건의해서 궁녀 굴씨를 비롯해 환관 이방조, 장삼외, 유중림, 곡풍등, 두문방과 함께 1644년 11월 조선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조선 최초로 명나라 궁녀가 조선에 온 기록인데 명나라 궁녀가 조선의 궁녀로 보내졌다는 역사는 약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에서 궁녀를 모집해 원이나 명나라에 보낸 것과 다를 게 없지만, 조선은 원과 명나라에서 공녀를 요구한 것이고 반대로 명나라에서는 조선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선물로 궁녀를 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소현세자를 따라 조선에 온 명나라 궁녀 굴씨는 사실상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 명나라 16대 황제 황후의 궁녀였습니다 명나라 황후의 궁녀였다가 소현세자를 따라 조선까지 흘러 들어온 굴씨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그 자체라고 할만했습니다 굴씨는 중국 소주(蘇州)의 양가집 딸이었는데 당시 명나라는 정치가 문란해 관리들의 학정이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굴씨가 살던 고을의 관리도 학정을 일삼으며 미인들을 마구 잡아들이기 시작했는데 이에 굴씨의 어머니가 딸을 죽이려고 했을 만큼 굴씨는 어려서부터 상당한 미인이었던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