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중비사] 중국과 조선 궁녀의 삶과 사랑

[조선궁중비사] 중국과 조선 궁녀의 삶과 사랑

#조선궁중비사 #중국 #조선 #궁녀 #사랑 #궁녀선발 #궁녀교육 #방중술 #속대전 궁녀의 선발과 교육 중국 황제는 삼궁육원(三宮六園)에 무수한 비빈들을 두고 있었는데 이런 비빈들의 일상생활, 이를테면 의식주 같은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중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궁녀 대신 환관들을 시중들게 하자니 황제가 불안하고, 이런 일을 시키기 위해 많은 무수한 남자들을 환관으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실에서는 수요에 따라 궁녀를 뽑아 들였는데 특히 조선과 같은 변방 국가에서 궁녀를 뽑을 경우는 황제의 체면 때문에 환관들이 황제의 조서를 받아 비공개적으로 궁녀를 뽑아왔습니다 각 황제마다 달랐지만 한나라 영제, 진나라 무제, 송나라 창오왕, 제나라 동혼후, 진나라 후주, 수나라 양제, 당나라 현종, 금나라의 해릉왕 등은 보통 수만 명의 궁녀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른 황제때는 궁녀들이 비교적 적었지만 적었어도 수천 명에 이르는데 청나라 때에 이르러 궁녀가 가장 적었습니다 구태지의 《인물풍속총담》의 〈청후궁지제〉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궁녀들은 각기 명액이 있었다 황후는 열둘, 황귀비와 귀비는 각각 여덟, 비빈은 여섯, 귀인은 넷, 상재는 셋, 답응은 둘… 이런 식으로 궁녀들을 갖고 있었다 ” 이 숫자는 명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었는데, 그 원인은 청나라 사람들이 한족 여자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족 여자들이 권력을 빼앗거나 비밀을 누설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궁녀들은 팔기(八旗)에서 윤유(允兪)로 뽑아 올렸습니다 조정에서는 보통 삼 년에 한 차례 궁녀를 뽑는데 이것을 ‘수녀 선발’이라고 했지만 실제 수요에 따라 그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