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20년 만에 '혐의 없음'‥경찰 '사과' /KBS 뉴스7 대전 세종 충남 - 09월 14일 (수)
[앵커] 이 내용 취재한 보도국 백상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백 기자, 21년 된 미제사건이 해결됐다고 떠들썩했는데 이런 이면이 있었군요 오래된 사건이라 당시 용의자들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취재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기자] 네, 지난달 경찰이 2001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2명을 검거했습니다 현재 검찰에 송치된 이승만과 이정학입니다 경찰은 DNA 분석 기술의 쾌거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고 피의자 둘 중 한 명이 2003년 대전 은행동 현금수송차 도난사건까지 자신이 한 것이라고 자백하면서 또 다른 미제사건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되며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주목한 건 경찰이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2002년, 용의자로 지목했던 20대 청년 3명이었습니다 이번에 잡힌 피의자들이 추가 범행까지 자백한 상황이라면 당시에는 어쩌면 무고한 사람들이 범인이 몰렸던 셈인데 경찰에서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대대적인 검거 기자회견을 한 지난달 30일, 새로운 피의자의 검거 소식을 전하는 한편 죄 없는 사람들을 진범처럼 발표했던 당시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함께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보도국으로 전화가 한 통 오면서 본격적인 후속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앵커] 어떤 전화였나요? [기자] 네, 과거 용의자로 몰렸던 3명 가운데 1명인 김 모 씨의 지인이 전날 KBS 보도를 보고 보도국으로 전화한 건데요 이 제보 전화 끝에 취재진과 어렵게 만난 김 씨는 당시 경찰로부터 강압수사를 당했다고 운을 뗐습니다 당시 20살이었던 김 씨는 2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당시를 기억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자신을 때리고 위협하며 허위자백을 유도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무작정 대전에 있는 경찰 기동대로 끌려간 뒤 수갑을 찬 채 마구잡이 폭행을 당했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 입장에서 무작정 그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는데요 먼저 여러 경로를 통해 김 씨가 실제 용의자로 지목됐던 이들 중 한 명이 맞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또, 김 씨가 짧지 않았던 인터뷰 시간 내내 자신이 끌려갔던 장소와 정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며 일관되게 진술하고 당시 용의자로 몰린 이들이 비슷한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판단 근거로 삼아 김 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경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앵커] 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죠 20년 전, 해당 용의자들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3년 뒤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이들이 범인이 맞다며 재수사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이 글을 쓴 사람도 경찰의 협박에 글을 썼다는 폭로를 해왔잖아요 [기자] 네, 앞서 강압수사 의혹에 대한 보도가 나간 뒤 또 다른 남성 A씨와 연락이 닿았는데요 A 씨는 2005년,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자신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용의자의 친구라며 이들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지금 와서 보면 죄 없는, 그것도 친구를 범인이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건데요 A 씨는 취재진과 만나 당시 경찰에게서 자신을 공범으로 보고 있다며 친구들에 대한 재수사 요청을 담은 글을 신문고에 올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당시 경찰이 신문고에 올릴 글의 초안을 주면서 중요한 부분을 형광펜으로 강조했다고도 말하는가 하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감시를 끝내고 놓아주겠다는 말에 경찰 요구대로 친구들의 담배꽁초를 주워다 주거나 뒷조사를 해 전달하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A씨는 20년 만에 취재진을 만나 당시 범인으로 몬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며 자신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앵커] 어찌 보면 A 씨 또한 경찰 강압수사의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당시 경찰수사의 문제점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KBS 보도가 이어진 가운데 결국, 오늘, 경찰이 공식입장을 냈죠 [기자] 맞습니다 대전경찰청이 오늘 기관 명의로 사과의 뜻을 담은 공식 입장문을 냈습니다 앞서 기사에서도 전해드렸지만 경찰은 깊은 위로와 유감을 표현하고 보상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경찰이 처음부터 공개 사과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강압수사 의혹 보도가 나간 뒤 경찰은 피해를 주장한 과거 용의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사과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20년 동안 누명을 쓰며 살았던 이들은 바란 건 경찰의 '공식 사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당시 사건 기록에서 강압수사 정황을 찾을 수 없다며 입장 발표를 미뤘는데요 시간을 끄는 사이 신문고의 재수사 요청 글까지 경찰이 사주했다는 폭로를 담은 KBS의 추가 보도가 나오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경찰이 결국 공식 입장문을 냈습니다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새로운 피의자 이승만과 이정학이 잡힌 지 20일 만에 과거 용의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 겁니다 사건 전체로 보면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한 2002년 이후 20년 만에 나온 사과였습니다 다만, 저희가 의문을 제기한 폭행과 강압수사 의혹이나 재수사 요청 글 사주 여부 등에 대한 해명은 쏙 빠져있었습니다 아직도 현직에 남아 있는 과거 수사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런 의혹들이 모두 규명돼야 경찰의 공식 사과는 무게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앵커] 이번 경찰의 입장문에 대해 과거 용의자로 지목됐던 분들은 어떤 입장인가요? [기자] 네, 진실 규명은 아직 되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을 때리고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는 주장에 대한 경찰의 책임 있는 답변을 원하고 있고요 이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사과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인권위원회, 경찰청 청문감사관실, 관련 소송 등 앞으로 이들이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다만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났고 증거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어느 기관도 선뜻 이들을 돕겠다고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피의자가 잡힌 지금도 과거의 용의자는 여전히 자신들이 본 피해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전 #미제사건 #강압수사 #누명 #경찰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