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시절 예순한 번째 이야기
병참대 경계파견
(9) 휘발유와 술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병참 3종 창고는 유류저장고입니다
고급 항공유에서부터 시작하여 벙커C유까지 유류가 종류별로 드럼통에 담겨 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기름이 쌓여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기름을 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잘 지키고 아무 일 없이 근무를 끝내는 것이 우리가 할 최선의 의무였지요
그런데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기름통에서 기름을 조금씩 빼내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기에 이 기름을 빼내다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자대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 양OO상병과 김OO상병이 오후에 자대를 갔습니다
본래 자대는 병참 정문을 통해 나가서 국도를 따라가서 구암리로 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이 길로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길로 가지 않고 질러가는 길로 갔습니다
즉 우리가 근무하는 3종 창고 앞으로 해서 산길을 가면 우리부대 뒤편의 대월리 쪽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고 11초소를 넘으면 바로 자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길로 가면 빨리 갈 뿐만 아니라 정문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행정반에 보고하지 않고도 다녀올 수 있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대에 갔다가 밤이 이슥해서 어두워진 다음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빈 몸으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말들이 막걸리를 통째 들고 온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해서 가져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늘 술에 목말라하는 군인들에게 한 통의 막걸리는 그야말로 꿀맛 같이 달콤한 선물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막걸리를 잘 마셨습니다
20여명 밖에 안 되는 소대이고 또 근무를 서야하기에 맘껏 마실 수 없다보니 한통의 막걸리로도 소대 회식이 넉넉했습니다
그런데 김, 양 두 상병이 막걸리를 가져온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막걸리 통을 잘 씻어 말려두더니 밤에 야간 근무시간에 그 통에 휘발유를 한통 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휘발유를 들고 그 밤에 산길을 걸어 넘어가더니 그 휘발유를 주고 다시 막걸리 한 통과 바꿔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은밀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휘발유 값이 막걸리 값보다 몇 배나 비싸기 때문에 가겟집에서는 큰 이득을 보는 것이고 우리는 그 두 사람의 수고로 돈 한 푼 안들이고 날마다 막걸리를 마실 수 있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