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09) 사데교회에게 주신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계3: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교회 가운데 하나였던 사데교회, 이 교회의 별명은 살아있다고 하는 명목상의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라는 것이다 사실 이 교회는 오직 책망만 받은 두 교회 가운데 하나였다 대체 이 교회는 무슨 잘못을 했길래 주님으로부터 책망만 들었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에 대한 주님의 처방책에 따르면, 과거 그들이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확고히 붙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그들의 현재의 상태를 단호하게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신학자들 중에는 이 사데교회가 교회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시대의 교회(A D 1517~1700)라고 말한다 정말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는 죽어있는 교회였는가? 정말 생명책에 이미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그 이름이 지워질 위기에 처한 교회인가?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칭찬과 책망, 권면과 당부의 말씀을 사도바울이 기록한 책이 요한계시록 2~3장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은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 밧모섬에 있을 때 본 것(1장) 그것은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이었다 둘째는 지금 있는 일들로서, 예수께서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보내라는 편지다(계2~3장) 셋째, 그것은 장차 될 일들로서 사도요한이 하늘보좌와 일곱인과 일곱나팔 그리고 일곱대접재앙에 관한 계시다(4~22장)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소아시아에 써보내라고 했던 일곱교회들 가운데 다섯번째 교회에 해당하는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살았다는 명목상의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사실상 죽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가 역사적으로는 어느시기에 해당하며, 그 시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과연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까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사데교회는 사데(사르디스)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다 그런데 이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가 특이하다 양쪽에 아주 많은 무덤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데교회 옆에는 이 도시의 수호신인 거대한 시벨레(Cybele) 여신의 신전이 떡하고 들어서 있다 그리고 이 도시는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왜냐하면 이 도시가 크지는 않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삼면이 절벽으로 구성된 산 위에 놓여 있었고,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도시는 단 2번의 침략 이외에 침략을 받아보지 못했던 도시였다 이 도시 사람들은 자기의 도시를 휘감고 도는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였고, 흰 양털로 옷감을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가난같은 걱정은 하지 않고 있던 동네였다 그런데 이 교회는 3가지 면에서 참 특이하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첫째, 에베소나 버가모나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처럼 이단의 공격이나 유혹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유대인들이나 로마정부로부터 핍박이나 고난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이 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오직 책망만 들었던 교회라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교회의 신앙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사실 신앙이 견고해지고 강해지려면 유혹이나 핍박이 있는 것이 더 낫지 아니한가 싶다 하지만 사데교회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던 평화스러운 교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이 교회에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들이 들어야 했던 책망은 무엇이었고, 격려는 무엇이었으며, 이기는 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또 무엇일까? 먼저, 이 교회를 예수께서 자신을 어떤 존재로서 소개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 중간생략 --- 그렇다면, 사데교회는 교회사적으로 어느 시기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것은 A D 1517~1700년 까지의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의 시대의 교회가 최고였다고 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것이 맞는 것일까?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있던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진단했는가? 그것은 사데교회가 살았다고 하는 명목상의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은 죽어있는 상태라고 하셨다 이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처음으로 뜨겁도록 살아났으나, 뒤를 이은 칼빈이 치고 들어옴에 따라 그의 예정론 때문에 교회가 또 다시 죽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루터의 처음 종교개혁은 아주 복음적이고 성경적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사람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종교개혁자 칼빈에 의해 다시 종교개혁은 거대한 암흑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어거스틴의 잘못된 신학사상을 물려받은 칼빈이, 구원론을 믿음과 회개에서 믿음과 예정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공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구원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것이었다 사실 루터도 처음에는 오직 믿음과 지속적인 회개를 통한 구원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가 쓴 95개조의 반박문 중에서 무려 11조항이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회개를 지속해야 한다 것이었다 그렇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을 이어받은 칼빈이 개인구원예정과 견인교리를 가지고 들어옴에 따라 교회는 다시 중세와 같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칼빈이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서 아니라, 만세전의 성부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의 절대적인 작정에 의한 구원은 바꿀 수도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 번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는 어찌하든지 구원받게 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은 비성경적인 교리였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단 한 번도 어떤 아무개 개인을 구원으로 예정했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복음을 듣고 믿어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예정해 놓았던 것이다(막1:15) 다시 말해 성경에는 개인구원예정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개인구원예정 교리를 칼빈이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교뢰를 붙드는 순간,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는 구원을 그만 따놓은 당상처럼 여겨서, 신앙의 긴장의 끈을 무장해제시켜 버리고 만다 자신이 설령 죄를 지었어도, 칼빈의 견인교리를 믿고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기를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눅15장의 회개하는 둘째 아들의 예를 보라 그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 회개는 하나님이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코를 꿰서 억지로 회개시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과거의 삶을 돌아보아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가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성령의 역사함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했다 그러니 처음에는 예정론에 의한 구원론으로 인하여 감격함으로 반응하지만, 나중에는 구원의 감격이 다 식어버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즉 종교개혁시대의 교회가 외부적으로는 살아있는 교회라 알려졌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는 교회였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회개해야 한다 또한 회개와 믿음을 통한 예수님의 구원을 견고히 붙들어야 한다(빌2:12) 그리고 날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복하면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돌이켜 다시는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성도라 할지라도 죽는 순간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수가 있다 정신차려야 한다 사데교회와 종교개혁시대처럼 잘못된 생각과 교리 가운데 자신이 속해 있다면 빨리 빠져나오라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게 합당하게 날마다 더러운 자신의 행실 옷을 예수님의 피에 씻어(회개하여) 흰 옷이 되게 하라 건투를 빈다 --- 계속 --- [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