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153-160절 (레쉬)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 김광영 목사

시편 119편 153-160절 (레쉬)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 김광영 목사

레쉬(20번째) : 153-160절 자신이 당한 고난을 하나님께 아룀 [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54]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155]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악한대적들 vs 말씀을 사랑하는 자신 [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모든 구절이 '레쉬로 시작하는 153〜160절은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 대적들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한다 153〜156절에서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께 아뢰며 구원을 호소하고, 157-160 절에서는 악한 대적들과 말씀을 사랑하는 자신을 뚜렷하게 대조한다 [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그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는 건 바로 이 고난이다 이 고난으로 인해 말씀의 길로 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고난은 오히려 축복이다 마치 양떼들을 위한 전기 울타리처럼, 고통스럽지만 안전하게 그를 지켜주기 위해 고난이 필요하다 시인은 고난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잊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의 변호사가 되어 주실 것이고(153〜154절), 악인들은 주님에게서 멀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155절) 사실 시인은 많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고, 세상의 상식을 거부하면 필연적으로 주위에 적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시인은 자기를 핍박하는 대적들이 많기는 하지만 주님의 긍휼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156〜157절) [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8절에서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다시 강조된다 이것이 주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심의 증거다 이 미쁘신 하나님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자들을 볼 때 역겨운 마음이 생긴다 어떻게 그런 신실하신 하나님께 그토록 불성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토록 미쁘신 하나님의 믿음을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역겨운 감정은 159절의 주를 향한 사랑과 동전의 양면이다 마음에 간절히 원하는 만큼 행동으로 다 실천한 건 아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법도들을 향한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그의 마음속에 새겨 주셨다 시인은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거짓된 자들을 보고 슬퍼하지만, 그들의 영향을 받거나 그들을 따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158〜159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들은 진리이며 영원하기 때문에(160절), 잠깐 세력을 떨치다가 금방사라지는 악하고 거짓된 자들의 영화를 따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비웃는 자들, 교회를 비방하는 자들이 주위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욱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안팎으로 어두움의 세력이 힘을 과시하더라도,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훨씬 더 크고 강함을 느낍니다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강령은 하나님 말씀의 ‘시작, 머리, 근원’이라는 의미다 이 절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진리인 말씀을 말해준다 “위험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닻이 되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자 자신의 문제와 영적 대적들이 더 크고 무섭게 보이는가? 아니면 주님의 자비하심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가? 어떻게 올바른 균형을 유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