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량수전 무량수전/고려ㅣ목조 건축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물

부량수전 무량수전/고려ㅣ목조 건축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물

경북 영주 봉황산에 자리 잡은 부석사는 신라시대인 676년(문무왕 16) 의상스님이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펼치기 시작한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사찰이다 부석사의 자랑거리는 이와 같은 오랜 역사와 종교적 유래뿐만이 아니다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세속을 초월한 숭고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고, 가을이면 사찰 입구의 은행나무 길이 노래지고 발그레한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리는 밭이 있다 비탈진 산지의 경사면에 대석단을 쌓아가며 가람을 배치하여 단촐하면서도 역동적인 동선을 자아내고, 소백산줄기가 춤을 추듯 너울대는 장쾌한 경관을 품은 건축 미학도 살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목조 건축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 무량수전까지 ,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절집으로 손꼽힐 만한 여러 요소를 간직한 절집이다 어느 절집에서나 가장 중요한 건물은 요지에 자리 잡는다 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러 석단을 잇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무량수전은 소백산줄기가 마치 파도처럼 출렁이는 듯 시원스럽고도 웅장하여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전망을 보여준다 1972년 봉정사 극락전에서 상량문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자리매김 되기도 하였다 봉정사 극락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에 버금가게 오랜 역사를 갖는 건물이다 1916년 해체 수리할 당시 서북쪽 귀공포*에서 발견된 묵서명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인 1358년(공민왕 7)에 왜구의 침략으로 건물이 불타 1376년(우왕 2)에 고쳐지어졌다 중수 연대가 1376년이라면 적어도 150-200년 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외목도리를 제외하고도 9량이나 되는 도리를 인 팔작지붕집이다 정면의 칸 사이도 비교적 넓고 도리도 많아 칸 수에 비해 우람하게 느껴지고 지붕도 화려한 팔작지붕집이지만 포작(공포를 짜서 꾸미는 일 또는 짜 맞춘 것을 말함)은 지붕 위에만 둔 주심포집이다 무량수전의 포작은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모습이 역력하여 건축사에서는 주심포 양식의 모범 사례로 꼽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기둥과 처마이다 여기에는 기둥의 '배흘림', '귀솟음', '안쏠림'과 평면의 '안허리곡' 등의 전통 건축 기법이 숨어 있는데, '배흘림'이란 기둥의 아래쪽 3분의 1쯤 되는 배 부분이 불룩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을 말하고, '귀솟음'은 귀기둥이 다른 기둥들보다 좀 더 높은 것을 말하며, '안쏠림'은 기둥 위쪽 부분을 건물의 안쪽으로 살짝 경사지게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안허리곡'은 가운데보다 모퉁이의 처마끝이 더 튀어나오게 하여 처마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리도록 하는 기법이다 이 모두가 크고 묵직한 무량수전의 지붕을 활짝 펼친 새의 날개처럼 가뿐히 여기게 하는 건축적 장치이다 무량수전은 벽면의 가운데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은근히 휘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앞면은 가운데 3칸 곧, 어칸과 퇴칸은 분합문과 광창으로 되어 있고, 가장자리의 2칸 곧, 협칸은 두 짝짜리 창으로만 되어 있다 창들은 모두 위쪽으로 들어 올려 고정시킬 수 있는 형식이다 본래는 앞면도 뒷면처럼 판문과 살창 구조였을 것이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홍건적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왔다가 귀경길에 부석사에 들러 썼다고 한다 출처_국가문화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