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 보겠습니다 [신동욱 앵커의 시선]
"지금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년 전 권영길 민노당 대선후보가 TV토론에서 던진 질문은, 국민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를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 덕분에 진보정당으로는 획기적인 득표를 했지요 그런데 그 말은 원전이 따로 있습니다 "4년 전보다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레이건 후보가 카터의 4년 경제 실정을 꼬집은 이 말은 미국 TV토론에서 가장 멋진 코멘트로 평가 받습니다 상대의 공격을 시종 부드럽게 받아넘기는 여유와 위트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지요 카터가 그의 복지공약을 거칠게 몰아붙이자 미소 지으며 한마디 합니다 "또 시작이군요" 4년 뒤 TV토론에서는 일흔세 살 고령이 이슈가 되자 "나이를 문제삼지 않겠다"고 절묘하게 응수해 폭소를 자아냈지요 "상대 후보(55세 먼데일)가 어리고 경험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습니다" 어제 여야 4당 대선후보들이 벌인 첫 법정 TV토론의 주제는 경제였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가 거친 네거티브 공방에 빠져들면서 국민과 나라의 살림살이 토론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앞선 두 차례 토론에서 삼가던 배우자 의혹들이 도마에 올랐고, 서로 말 바꾸기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결국 대장동 의혹에 이르러선 25년 TV토론 사상 최악의 장면들을 쏟아냈습니다 녹취록을 그대로 직접화법으로 인용한 대목은, 마치 거리의 드잡이질에서나 들을 법한 엄포를 방불케 했습니다 "내가 가진 카드면 윤석열은 죽어" "이재명 게이트라는 말을 김만배가 한다 그러는데" 윤 후보가 '이재명 게이트'를 거론해 맞서면서 두 후보의 낯뜨거운 난타전은 절정을 치달았습니다 "허위사실이면 후보 사퇴하시겠습니까" "한번 녹취록을 털어보시지요" "후보님!" "끝까지!" 그런데 이 말이 나온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녹취록 앞뒤 맥락이 다 공개되면서 악마의 편집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윤석열 영장 들어오면 죽어"라고 한 말이 사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법관들의 타깃이 되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멀쩡한 말의 앞 뒤를 잘라 국민을 농락하고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려 했다는 의심을 백번 사고도 남을 일인데도 민주당은 해석의 문제일 뿐이라고 입을 닦았습니다 링컨은 상원의원 선거 합동연설회에서 숙적으로부터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는 모욕을 당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얼굴이 둘이라면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갖고 나왔겠습니까" 이렇게 고급스러운 유머와 위트까지는 기대도 안 합니다만, 전국민이 지켜보는 대선 토론회라면 적어도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르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는 기본적인 상식만큼은 지켜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거 토론회에서의 거짓말이 법정까지 가는 일이 종종 있긴 합니다만 그 전에 마음 심란하게 만드는 일 만이라도 그만 봤으면 합니다 1월 22일 앵커의 시선은 '차마 못 보겠습니다' 였습니다 [Ch 19] 사실을 보고 진실을 말합니다 👍🏻 공식 홈페이지 👍🏻 공식 페이스북 👍🏻 공식 트위터 * 뉴스제보 : 이메일(tvchosun@chosun com), 카카오톡(tv조선제보), 전화(1661-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