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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s최은희-1961년
젊은 날의 최은희 배우님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외모 옷차림도 너무 낭만적으로 아름답다 한국의 잉그리드버그먼이라고나 할까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최경순(崔慶順)이다(편집위원회, 김기제) 1943년 배우 문정복(文貞福)의 소개로 극단 아랑(阿娘)에 연구생으로 들어가서 해방 전까지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재건된 토월회(土月會),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등에서 무대생활을 했으며, 신경균의 새로운 맹서(1947)에 출연하면서 영화에도 데뷔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전쟁 기간 중에는 피난지 대구와 부산에서 국립극단 신협(新劇協議會)의 주요 무대에 올랐으며, 황남(黃男)의 권유로 신상옥(申相玉)의 코리아(1954)에 출연했다 이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신상옥과 신필름 영화의 전문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꿈,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 등을 거쳐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부터 흥행에 주가를 올렸다 이어 지옥화(1958),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 자매의 화원, 춘희(1959), 로맨스빠빠, 백사부인, 돌아온 사나이(1960) 등 신필름 전속으로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홍성기?김지미의 춘향전과 격전을 벌인 성춘향(1961)이 크게 성공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1961), 열녀문(1962), 쌀, 로맨스 그레이, 강화도령(1963), 벙어리 삼룡, 빨간 마후라(1964) 등 연이어 대작들을 발표한 그는, 1965년 민며느리를 통해 한국영화 사상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감독 작품은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으로 이어진다 또한 후학양성에도 관심을 쏟아 1966년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했으며, 1969년에 교장으로 취임했다 197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화출연과 극단 배우극장 설립 등 무대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1978년 안양영화예술학교 교류사업차 방문한 홍콩에서 돌연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이후 뒤이어 북한으로 오게 된 신상옥과 함께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우고 탈출기(1984), 소금, 심청(1985) 등에 출연했으며, 약속(1984)을 감독하기도 했다 1986년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1999년 남한으로 귀국했다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으며, 이듬해에는 안양에 신필름영화예술센터의 설립을 주도했다(최은희) 촬영감독 김학성과 이혼 후 신상옥과 결혼했다 해방 후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배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