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MBC뉴스]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29)..박열
2015/10/15 12:41:17 작성자 : 조동진 ◀ANC▶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구경북지역 독립운동가를 탐방하는 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적국의 여인과 평생 동지로,연인으로써 일본 천황제와 군국주의를 부정하고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모색한 문경출신 박열 선생을 소개합니다 ◀END▶ ◀VCR▶ 이곳은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 샘골 그러니까 박열 선생께서 1902년에 태어나서 살던 그 집을 복원해 놓은 곳입니다 박열선생 기념과 바로 입구에 있습니다 박열선생은 서울로 가서 뒷날 경기중고등학교가 되는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3 1운동에서 이제 민족문제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20대 나이에 도쿄로 가서 고학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 곳에서 흑도회와 흑우회 또 불영사라고 하는 아나키즘 조직을 즉 무정부주의 단체를 만들어서 항일노동투쟁과 의열투쟁을 벌입니다 그러면서 집중적으로 천황제를 부정하고 군국주의를 부정하는 활동을 벌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마침 1923년 9월 1일날 도쿄일대를 휩쓸었던 큰 지진 이 간토대진제때 오히려 한국인들이 1만명에 가까운 인명이 학살당하는 대비극을 맞게 되죠 그럴때 여기에 저항하다가 박열선생은 여성 일본여성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와 더불어 붙잡히게 되고 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에 일본은 그들을 일본왕을 죽이려 했다 해서 대역죄로 몰아가게 됩니다 박열선생이 펼친 법정투쟁은 참 특이하고 남다릅니다 일본의 법관이 법복을 입고 또 일본어 낮춤말을 쓰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도 한국의 관복을 입고 그리고 한국어로 낮춤말을 쓰겠다 하면서 반말투로 일본왕의 죄상을 낱낱이 지적을 하죠 이 사형이 선고되기 바로 몇일전에 가네코 후미코와 옥중결혼을 하게 됩니다 법관의 허락을 받아서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이것이 신문에 실리는 바람에 법관은 면직되고 그리고 내각은 총사퇴하는 후폭풍을 맞기도 하지요 가네코 후미코는 멀지 않아서 옥중자결했다고 하지만 진실은 알 길은 없습니다 박열선생은 해방된 뒤에도 두달이나 더 늦게까지 옥고를 치르다가 22년 반이라는 세월을 옥살이 하다가 나왔고 그리고 귀국뒤에는 6 25때 납북되고 맙니다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부부, 침락국과 식민지라고 하는 이 나라를 넘어서 국경을 넘어선 이 연인과 동지, 이들의 투쟁은 도쿄 한복판에서 천황제와 군국주의에 맞선 격정적인 투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