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마을구경] 와룡 중가구리 영양남씨 남흥재사 | 남흥마을 | 남흥저수지 | 동악골

[안동 마을구경] 와룡 중가구리 영양남씨 남흥재사 | 남흥마을 | 남흥저수지 | 동악골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남흥마을 영양남씨 남흥재사 국가민속문화재 제299호 고려 말기에 전리판서를 지낸 남휘주(南暉珠)와 참판 남민생(南敏生) 부자의 묘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 재사로, 묘소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 재사는 1500년경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남흥사의 법당건물을 재사로 개조하였다고 한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口자형 건물인데 우측에는 6간 규모의 누마루를 형성하여 원모루라 하였다 이 건물에는 누상(樓上)과 누하(樓下), 큰부엌쪽 3개소에 온돌방을 두었는데 각기의 용도가 다르게 되어 있다 큰부엌 쪽의 방은 윗방이라 부르는데 묘제 때에는 상장이라 하여 문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머문다,누상부(樓上部)의 방도 아랫방이라 부르며 묘제 때에는 하장이라 하여 나이어린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또한 누하부의 방은 아랫방이라 부르는데 평상시에는 관리인이 거처하나 묘제시에는 중장이라 하여 장년층이 묵는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남흥재사(南興齋舍))] ○ 중가구리 ​ 이 마을은 구한말 안동군 동선면(東先面)의 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흥, 장사리, 가장리, 성남골, 세곡, 무학과 부내면의 율세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구들의 중앙이 되므로 중가구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최근에는 안동시군 통폐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 남흥(南興) 남흥은 중가구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남동향 마을로 마을 앞을 막고 있는 용정산 너머에 안동댐 둑이 있다 와룡면 소재지 못 미쳐 오른쪽으로 놓인 다리를 지나 아스팔트 도로로 진입하여 직진하다가 중가구 2리의 가느실에서 우측 포장도로로 약 2km 들어가면 된다 이 마을은 고려 말엽에 영양남씨(英陽南氏)가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남씨가 주된 성을 이루고 살고 있다 동네 이름은 옛날 이 마을에 남흥사(南興寺)란 절이 있어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와 또, 영양남씨들이 번성하게 살았다하여 '남흥(南興)'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2가지 설이 있는데 영가지(永嘉誌)의 불우(佛宇)편을 보면 '부(府) 동쪽 음곡(陰谷) 아래에 남흥사가 있으며, 전리판서(典理判書)가 된 남휘주(南輝珠)공의 묘가 있는데, 이 때문에 이 절의 이름이 남흥사로 불리워 지게 되었다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남흥사가 창건되기 전부터 마을 이름은 이미 '남흥'으로 불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남흥 마을은 예전에 마을이 성했을 때는 가구수가 30호가 넘었으나 현재는 18호 정도이다 이 중 영양남씨가 9집이고, 안동권씨가 3집, 나머지는 각성으로 고추, 벼, 과수농사를 생업으로 한다 ◇ 안쪽골:남흥 안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동구거리:남흥 남서쪽 동구에 있는 골짜기이다 ◇ 용바우:마을 동편 밭둑 가에 있는 바위로 길이는 5m정도이며 용(龍) 모습으로 생겼다 전 하는 말에 따르면 와룡면 가야리 용두골(龍頭谷) 뒷산에서 용이 날아오다가 남흥 앞산인 용 짐(龍井山)에 앉았다가 이 마을 부근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 바위는 그때 떨어진 용이 변 한 것이라 한다 ◇ 용바우웅굴:용바위웅굴 남쪽에 용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이 우물을 용바우웅굴이라 부른 다 우물은 둘레가 약 3m, 깊이가 1m로 용바우로부터 좌측으로 50m쯤 떨어진 밭둑 아래에 있으며, 물맛이 좋다 물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데 일정량이 우물에 채워지면 물이 솟아나 지 않고 물이 비워지면 다시 솟아난다고 한다 예전에는 마을의 식수원으로 사용한 우물이 었으나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마련되어 우물은 현재 입구가 폐쇄되어 있는데 우물을 막아 서 동세가 줄어든다고 믿는 이도 있다 이 우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한 옛날에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시고 살 아가는 아주 마음씨가 착한 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스물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 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여 늦게나마 장가를 갔다 장가간 후에도 열심히 일을 하였으나 살림은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태기가 있어 아들을 하나 얻게 되었다 산모가 아들을 낳을 때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말하기를 "이 아이 는 명이 짧은데 내가 다스리는 이 산 밑에 천년 묵은 구렁이가 있는데 그 구렁이는 어린 남아(男兒) 하나를 잡아먹으면 승천할 수 있는데 네 아이는 어차피 명이 짧으니 제물로 바치 면 너는 큰 부자가 될 것이고 석 달 후면 다시 옥동자를 얻으리라"하고 사라졌다 부부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아이를 주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 밤 부부는 아직 첫 돌도 안 지난 아기를 꿈속에서 본 그 장소에 갖다 놓았다 밤이 깊어지자 갑자기 천둥과 번 개가 치고 큰 소낙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큰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갔다 용이 승천하자 갑자기 그 집 앞으로 때아닌 물이 밀어닥쳐 냇물을 이루더니 어디서인지 볏가마니가 숱하게 물결에 밀려왔다 이 집은 이 곡식으로 큰 부자가 되었고 산신령의 말대로 석 달이 지나서 태기가 있어 건강하고 아름다운 옥동자를 얻게 되었다 그 후 냇물은 점차 줄어들더니 냇물 의 근원이 됨직한 곳에 하나의 우물을 이루었다 이 우물은 바로 용이 승천한 곳에 생긴 것 으로 항상 맑은 샘물을 고여있으며, 이 물을 먹으면 건강한 첫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진 다 ◇ 동구나무(느티나무):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 5그루로 나무 가운데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돌 로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 묘골, 묘곡(卯谷):남흥 북동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산세가 아름답고 묘하게 생겼으며 산에는 토끼가 많아 묘골이라 하였다 현재 순흥안씨 3집과 박씨 1집이 산다 ▶ 동악골(東嶽, 東岳) 용정산 동쪽 중턱에 위치한 마을로 동악골 혹은 동악이라 한다 안동댐 홍보관 조금 못 미쳐서 좌측의 긴 골짜기로 올라가며 노변에 형성된 마을로 중가구1리와 2리에 속해있으며 근래에 들어 노변을 따라 식당 등이 들어서 성업중이다 영가지(永嘉誌)를 보면 안동부 동쪽의 동악(東嶽), 남쪽의 남산(南山), 서쪽의 서악(西嶽), 북쪽에 금학산(琴鶴山)을 일러 4악(四嶽)이라 칭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악골은 바로 4악 가운데 하나인 동악에 형성된 골짜기로 영가지 편찬 당시에는 이곳에 절(東嶽寺)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폐사된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 용정산(龍井山):용점산(龍點山) 혹은 용짐으로도 부른다 와룡면 중가구리와 산야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280m이며 산중에 절(龍井寺)이 있었다 산 남쪽에 샘(龍井)이 있는데, 가물 때도 마르지 아니하며, 기우단이 있다 ◇ 용정(龍井):영가지에 따르면 안동부 동쪽 용정사의 대(臺) 아래 용정이 있어 낙동강과 맥이 통해 낙수가 창일하면 우물물이 불어나고, 날이 가물 땐 그 우물을 파면 비가 온다라고 하였 다 ◇ 용정사지(龍井寺址):가뭄 시에 기우제를 지내는 용정산의 남쪽에 동쪽으로 낮아지는 골에 위치하고 있다 계단식 축대가 3곳 남아 있으며, 주변에 기와편이 산재해 있고, 우물지(龍井) 가 1곳 있다 (지명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