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여성들] 삼성가의 실세 삼성家의 막후 실력자 홍라희 여사의 빛과 그림자
홍라희 여사 편 삼성家의 막후 실력자 홍라희 여사의 빛과 그림자 제목 1, 국내 최대 재벌가 며느리와 총수 부인으로 생활했던 홍라희 여사의 찬란한 가족 관계 2, 이재용 회장 구속을 지켜 보며 가슴앓이 했던 홍라희 여사의 애환 3, 7조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한 홍라희 여사의 다음 행보는?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안녕하세요 홍성추입니다 한국 재계에서 삼성전자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될 정도로 삼성전자의 위상은 실로 막강합니다 삼성전자는 국내뿐 아나라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다국적 기업입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제일먼저 찾은 곳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입니다 현재와 같은 삼성전자를 만든 사람이 몇 년전 타계한 이건희 회장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홍라희 여사입니다 홍 여사는 현재 삼성전자의 주식을 개인이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고 여성 주식부자 국내 1위이기도 합니다 홍 여사는 예술계에 보이지 않는 큰 손으로만 알려졌을 뿐 삼성가의 막후 실력자란 사실은 대부분 모를 것입니다 국내 최고의 명문 가문으로 불리는 홍라희 여사 집안과 그동안 베일에 쌓였던 그녀의 활동 상황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삼성왕국은 이병철 회장이 28세 때인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됩니다 해방과 6 25전쟁을 거치면서 삼성은 국내 최대의 재벌로 자리잡았고 이병철 회장은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라 재계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1987년 영면하고 맙니다 두 형을 제치고 왕좌를 차지한 이건희 회장은 품질경영과 경영 혁식을 부르짖으며 삼성 문화를 완전히 탈바꿈합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며 삼성의 체질을 개선합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회사가 됐고 반도체 부분에서는 세계 1위를 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2014년 5월 갑자기 쓰러지면서 외동 아들인 이재용 체제가 들어서게 됩니다 긴 와병 끝에 이건희 회장이 2020년 영면하고 명실상부한 이재용회장 체제가 완성됐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박근혜 정권이 탄핵을 받을 때 이재용 회장은 상당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한 때 삼성의 계열사였던 중앙일보에서 개국한 jtbc에서 연일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파고들면서 이재용 체제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 jtbc의 소유주가 다름아닌 이재용 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의 남동생인 홍석현 회장이라 당시에 숱한 얘기를 양산했습니다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이재용 회장은 구속되고 긴 영어의 생활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재용 회장이 구속되자 삼성 경영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재계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항간에서는 홍라희 여사가 수렴 청정할 것이라는 얘기에서부터 홍씨 집안에서 접수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별별 소문들이 돌았습니다 정치권에서 삼성그룹을 해체하려고 한다는 말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재용을 제치고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퍼지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후 이재용 회장 체제가 굳어지면서 그러한 소문들은 그야말로 설로 끝나고 말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믿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저도 그 때 이부분에 대해 취재를 많이 했었습니다 삼성 집안 사람들과 그룹 핵심 인사들을 만나면 전혀 그런 조짐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홍씨 집안으로 삼성이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대부분 홍라희 여사가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홍라희 여사의 영향력은 밖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단한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실제 홍라희 여사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난 뒤부터 보이지 않는 이재용 후견인으로 역할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건희 회장 상속 지분 분배 과정이나 이재용 회장 체제를 만드는데 잡음을 없애는 일까지 충분한 역할을 한 것으로 그룹에 정통한 인사들은 말을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생존했을 때까지만 해도 홍라희 여사는 미술관 관장으로 있으면서 예술계에 큰 손으로 활약하는 일 외에는 조용한 그룹 총수 부인으로 비쳐진게 전부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부인이 앞장서서 일을 하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홍라희 여사는 국내 최대 재벌총수 며느리라는 타이틀 못지않은 명문가 집안의 장녀입니다 그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시절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수재로 이승만 정권시절 법무장관과 내무부장관을 지낸 홍진기씨입니다 홍진기씨는 4 19혁명 때 내무부장관으로 재직해 이승만 정권의 몰락과 동시에 형무소에 있다가 나중에 사면돼 풀려난 케이스입니다 당시 같은 죄로 수형 됐던 장관이나 몇몇 인사들은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습니다 홍진기 당시 장관은 운좋게 풀려나 이병철 회장과 연이 닿으며 사돈이 되고 결국 삼성 경영에 합류하게 됩니다 홍진기씨는 중앙일보 창간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중앙일보 회장으로 있으면서 동양방송인 TBC를 개국하는 등 메스컴 경영을 도맡아 했습니다 홍진기씨와 이병철 회장은 사돈이면서 동지로 삼성경영에 관여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형인 이맹희 회장은 저랑 만났을 때 삼성 경영을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맡기는데 홍진기 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주장은 이맹희 회장의 사견일 수 있으나 어쨌든 유교 정신이 강한 집안에서 장남이나 차남을 제치고 3남에게 ‘황제’자리를 준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병철 회장의 회고록 ‘호암자전’에는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겼지만 6개월도 못가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둘째 창희는 큰 조직을 다루는 회사보다 알맞은 회사를 경영하고 싶어 맡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메스컴 경영을 맡기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맡겼다가 나중에 기업 경영에 관심을 갖고 있어 맡기게 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장남과 차남 3남의 성격과 능력을 고려해 셋째 아들을 선택했다는 취지입니다 어쨌든 이건희 회장은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삼성을 세계적인 회사로 만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병철 회장이 잘 선택한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홍진기씨와 이병철 회장의 만남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4 19혁명이후 감옥에 있던 홍 전장관을 이병철 회장이 면회가면서 이뤄졌다는 것은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이를 주선한 사람이 나중에 삼성회장을 지낸 신혁확 전 총리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 의기가 투합됐고 사돈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홍라희 여사는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재원입니다 라희(羅喜)라는 이름은 전라도에 태어나서 기쁘다는 뜻으로 부친이 지었다고 합니다 1945년 당시 홍진기씨는 전주에서 판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홍라희 여사는 훨친한 키에 미모도 빼어나 처음 이건희 회장과 선을 보라고 했을 때 거절했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적극적으로 권고해 일본에서 선을 보고 얼마 없어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홍라희 여사 집안은 부친이 일제 강점기시절 경성제국대학을 다닐 정도로 수재였고 집안도 부유했었다고 합니다 홍 여사의 남동생들도 모두 흔히 얘기하는 KS 즉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수재들입니다 첫째 남동생인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로 30대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를 지냈습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X파일’사태로 주미대사를 그만두었지만 만약 그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UN사무총장은 반기문 대사가 아니라 홍석현 회장이 됐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 이후 행보는 충분히 가능한 일들이었을 겁니다 이 사태로 홍석현 회장과 삼성가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얘기들이 재계에 널리 퍼졌습니다 X파일이란 2005년 한 방송에서 당시 안기부에서 도청한 내용의 테이프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일파만파를 일으킨 사건입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의 대화 중에 대선 자금 제공을 공모하고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정황이 담겨 있는 테이프가 폭로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일입니다 어쨌든 이 사태로 홍 회장은 주미 대사에서 내려와야 했고 결국 중앙일보 경영에 전념하게 됩니다 둘째 동생이 고등검사장을 지낸 홍석조씨고 셋째 동생이 서울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를 나온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입니다 몇년전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과 사돈을 맺었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고 파경하고 말았습니다 넷째가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입니다 홍 회장 역시 KS출신으로 외무고시를 패스한 전직 외교관이었는데 기업 경영을 맡아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여동생인 홍라영씨는 한때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을 지냈습니다 노신영 전 총리 며느리로 시댁도 화려한 집안입니다 이처럼 홍라희 여사 집안은 학력과 혼맥에 빠질데 없는 명문가 집안입니다 이병철 회장 생전에 예술품에 대한 안목을 키워 미술계에선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재벌가 안방마님입니다 그가 소장하는 작품의 가치는 말로 형언이 안 될정도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오늘은 국내 최대 재벌가 집안으로 시집와 최대 재벌 총수의 안방마님에서 막후 실력자로 소문이 자자한 홍라희 여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홍 여사는 남편이 그룹 대권을 이어받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고 또 아들이 이상없이 황제의 관을 쓰도록 돕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룹 총수 부인으로서의 역할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전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도 시가로 7조원이 넘는 삼성 주식을 대거 보유하고 있어 이 주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홍라희 여사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도 계속해서 지켜보려고 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