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사] 쉰 네 번째 이야기, 아테네에 과두정부를 세운 스파르타와 영혼의 산파, 소크라테스
#아테네 #스파르타 #레오티키다스 #과두정부 #리산드로스 #30인참주 #크리티아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테라메네스 #트라시불루스 #필리 #피레우스 #리산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전쟁이 끝난 직후인 기원전 404년, 아테네 시민들은 전쟁에서 패했으나 오히려 안심을 했는데 지긋지긋한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에 즐거웠습니다 비록 이번에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스파르타에 빼앗긴 패권을 곧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약속대로 성벽을 허물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티키다스(Leotychidas)는 군대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아테네 성안으로 들어왔고 스파르타 군대는 무력을 앞세워 거만하고 제멋대로 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리산드로스의 군대만 남겨 두고 모두 스파르타로 돌아갔는데 리산드로스는 아테네에 스파르타를 지지하는 정치가들을 불러모아 과두 정부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모두 30명이었기 때문에 ‘30인 참주’라고 부르는데 30인 참주의 지도자는 크리티아스(Critias)로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고 플라톤의 외숙부였습니다 30인 참주는 자신들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있으면 즉시 재산을 빼앗고 추방하거나 심지어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30인 참주는 시민들을 엄격하고 잔혹하게 압박했으며 민주파를 해체하려고 했고 조금이라도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였습니다 당시 30인 참주가 처형한 사람의 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마지막 10년 동안 죽은 아테네 인보다 많다고 합니다 30인 참주들은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아테네의 시민 수를 3,000명으로 제한하고, 또 다른 각종 방법을 이용해서 시민의 정치 참여를 막으려 했습니다 도덕과 윤리 규범에 어긋나는 참주들의 행동은 점차 아테네 인들의 불만을 고조시켰는데 시민뿐 아니라 30인 참주 내부에서도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