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2월11일(수)21세기두란노서원QT말씀(그들이차례대로잔치를끝내면욥이그들을불러다가성결하게하되아침에일어나서그들의명수대로번제를드렸으니),페북두란노서원66운동(여호와께서명령하시

2024년12월11일(수)21세기두란노서원QT말씀(그들이차례대로잔치를끝내면욥이그들을불러다가성결하게하되아침에일어나서그들의명수대로번제를드렸으니),페북두란노서원66운동(여호와께서명령하시

QT 본문 말씀은 욥1:4~5 / '페북두란노서원66' 책에서는 레위기 파트의 레10:1~3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행복카페교회 담임&리바이벌센터 대표 양범주목사) ※설교나 예배 등 더 많고 다양한 자료는 페이스북('양범주' 검색), 홈페이지(Daum 검색 '행복카페교회'의 리바이벌센터게시판이나 설교&예배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내용 전문* 1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1:4~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등과 같이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은 제대로 된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자랑이 되기까지 한 욥이 얼마나 죄악들에 민감했고 어느 정도로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신앙인 것이었나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현실적인 단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래 본문에서 이어지는 욥기 1장 8절에서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까지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믿음이었던 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그의 아들들의 죄악들을 위해서까지도 극히 경계하며 함께 싸워주고 중보적으로 기도해 주면서 그 각각을 위해 번제들을 드리기까지 했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이겠거니와, 실제로 다른 누군가를 위해 중보적으로 기도할 수 있고 긍휼을 구하는 자가 있다면 당연히 그 자신을 위해서 먼저 그렇게 해 오지 않고서는 힘든 이치이듯이 욥 또한 마땅히 그러했을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어쨌든 욥은 오늘날 우리들로 치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중보적으로 기도해 주고 긍휼을 구하며 죄악들이 아닌 말씀의 사람이 되기를 그토록 소망하고 간구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욥이든지, 구약의 그 어떤 믿음의 선배들이든지, 더 나아가 오늘날의 우리들이든지 그 누구든지 간에, 또한 그 어느 시대에서든지, 그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고, 특히 구원에 참예케 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로 인한 자복과 긍휼과 사함들, 응답과 예비와 역전들 등도 아예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데 그렇기에 실상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이후인 오늘날의 우리들과 달리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오늘날의 우리들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싸울 수 있었고, 혹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참회하며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면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이야 말로 그러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 중 한 사람인 것이고, 욥이 그의 아들들을 위해 올려 드린 번제는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모세의 지팡이, 깨어진 반석, 회막, 성전, 지성소, 제사장, 사사,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멜기세덱 등과 함께 구약 시대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되었으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으로 그 어느 인생일지라도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었고 긍휼을 구할 수 없었으며 응답 받을 수 있는 기도도 불가했음은 물론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인 구약의 때에 오늘날의 우리들이 마치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고 은혜를 입을 수 있으며 구원에 참예케 하고 기도도 응답 받게 되고 역전과 이적과 복들 등과 같은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누릴 수 있게 했던 사람들, 역할들, 통로들, 방법들 등이 그러한 구주 예수님을 위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어쨌든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사실인 것이고, 실제로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을 넘어 구주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근본적인 구원의 일들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사실상 다른 그 어떤 인간적, 세상적, 종교적인 노력과 능력과 방법들로도 아예 불가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인 욥은 어떤 식으로든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이고 그 누구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자인 것이며, 아브라함이나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이사야,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 등 모든 믿음의 선배들마다 구원에 참예케 되지 않은 자들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사실 구원에 참예케 되지 못한 자가 믿음의 선배로 성경에 그렇게 증거될 수는 없는 것이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한 영향력과 열매들이 될 수도 없는 것이고, 게다가 그들 또한 구주 예수님 외에는 달리 다른 구원의 방법들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바로 그와 같은 방법들로 오실 메시야, 곧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우리들이 믿고 의지하고 있는 구주 예수님과 동일한 분을 믿고 의지한 것이며, 그 외에는 달리 구약 성경에서 그들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살아 있는 믿음이 됨에 있어 다른 통로들이나 경로들은 전혀 있을 수 없어 보이고, 한 번 더 강조하면 다른 그 누구보다 아래 본문의 욥이야 말로 그러한 믿음의 선배들 중 하나였던 것인데 실상 모든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그러한 구원의 일들이 그런 식으로라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구주 예수님께서 말 그대로 그러한 모든 일들을 가능할 수 있게 하시는 구원자이시기에,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고, 실질적으로 하나하나 직결되지 않을 수가 없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자체부터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인 것으로 구주 예수님께서 욥의 때에 생각 이상으로 실질적 영향력이 되신 것이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성령님께서도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마찬가지로 그 어느 시대에서든 함께 하시면서 그렇지 않으신 것일 수가 없는 것인데 참으로 욥의 때를 위시한 구약 시대 뿐 아니라 모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그와 같은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구원의 일들마다 결코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이고, 실제로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제사장의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나답과 아비후에게 있었던 일은, 실상 아래(글자수 제한/홈피나 페북의 전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