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기념합니다. 예산군 광시면 독립운동 김한종의사 101주년 추도제례 영상 [2022년 09월 23일] [우리학교 2022년 독립운동 관련 현장체험학습 총정리]

3.1절을 기념합니다. 예산군 광시면 독립운동 김한종의사 101주년 추도제례 영상 [2022년 09월 23일] [우리학교 2022년 독립운동 관련 현장체험학습 총정리]

#독립운동가 #예산군 #광시중학교 #충남교육청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 또는 대한 독립 만세 운동(大韓獨立萬歲運動)은 일제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줄여서 기미운동(己未運動)이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인산일(장례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 대표 33인으로 부르며, 이외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적,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 대표 48인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약 3개월 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 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조선 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 수가 106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900여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 한편 신복룡 교수나 일본의 야마기 겐타로 약 50만 명 정도가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919년 3월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의 전체 인구는 1,678만 8천400명이었다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 중 2 76%에서 2 97%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3 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 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한편 3 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 총독부는 민족 분열책인 일명 문화 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되었다 [위키백과에서 참고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