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건재정인승기념관
우리말 지킴이 정인승 정인승선생님은 “말과 글을 잃게 되면 그 나라 그 민족은 영영사라지고 만다”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하여 일생을 헌신하신 한글 학자에요 “큰 나 작은 나”(겨레를 위한 큰 나 자신을 위한 작은 나)의 사상을 몸소 실천 하신 분이지요 건재선생님은 1897년 전북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25-8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부터 한문학을 배웠고 한글은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했다고 해요 16~17세에 이르러서는 마을에 동신학교라는 소학교를 열어 형이나 동생 그리고 친구들에게 한글과 한문학, 산술, 지리, 역사 등을 가르칠 만큼 영민한 분이셨어요 그 후 건재선생님은 용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에 연희전문대학교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어요 이후 민족교육의 중심지였던 고창고등보통학교에서 국어교사가 되었어요 정인승선생님은 당시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인해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어요 십여 년간 학생들에게 헌신적으로 우리말을 가르쳤지요 일제의 황민화 정책으로 우리말 교육에 대한 감시가 심해져 더 이상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되자 건재선생님은 1935년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이후 정인승선생님은 서울로 올라와 조선어학회 활동에 참여하게 돼요 선생님은 학회의 주필로서 큰 사전 편찬 업무와 한글학회 기관지인 ‘한글’의 편집과 발행 업무를 담당하였고 중고등학교 국어교재 편찬을 주도했지요 그러던 중 1942년 10월 일명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으로 선생님은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어 2년간 고초를 겪었어요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게 되면서 감옥에서 풀려난 건재선생님은 조선어학회 후신인 한글학회를 텅해 다시 활동을 시작해요 그 후 우리말 가로쓰기 국어교재를 만들고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인 큰 사전 6권을 1957년 10월 9일 한글날 발간했어요 겨레나 나라를 떠난 개인이 없으며 ‘큰 나’를 위한 ‘작은 나’ 의 희생은 영원한 것이니 요행이 아닌 주체정신으로 허영을 버려야 한다 건재 정인승 선생의 ‘나를 알자’ 라는 주체의 글에서 건재 정인승기념관은 일제침략기에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한글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2005년 6월 19일 생가 터 옆인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19에 세운 기념관이에요 전시실은 정인승선생님의 유년시절 성장과정과 고창고등보통학교에 영어선생님으로 부임하여 일제의 탄압에 맞서 우리말을 애써 가르치고,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큰사전을 편찬하는 등, 국내 유수의 단체와 대학에서 한글 부흥을 주도한 활동 내역들이 선생님의 유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요 사랑방 훈민정흠의 창제과정과 한글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시청각 자료를 통해 살펴보는 곳이에요 또한 정인승선생님이 생전에 연구하시면서 사용한 자료와 논문집, 서책류 등이 2000여점 정도 보관되어 있어요 사당 정인승선생님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매년 4월 10일 정일에 지방자치단체장, 유림, 한글학회, 군민들이 함께 모여 추모행사를 하고 있어요 주 최 : 문화재청 주 관 : 장수군 시행단체 : 초록누리협동조합 제 작 : 이진희 자막내용 출처 및 자문 : 장수군 문화체육관광과 가야문화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