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외친 "대한독립만세"...횃불의 힘 / YTN

밤에도 외친 "대한독립만세"...횃불의 힘 / YTN

[앵커] 대한독립을 외쳤던 만세 함성은 낮뿐만 아니라 깜깜한 밤에도 이어졌습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산으로 올라갔는데, 별다른 도구가 없던 당시, 횃불은 만세 시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승배 기자입니다 [기자] 임진왜란 3대 승전지 가운데 하나인 고양 행주산성입니다 조선의 명장 권율 장군, 전쟁을 승리로 이끈 행주치마 이야기는 많이 알지만, 이곳이 3 1 만세 운동 현장이란 사실은 잘 모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해 만든 행주대첩비입니다 이 비석을 중심으로 주민 5백여 명이 횃불을 들고 만세 운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정동일 / 고양시 역사문화재 위원 : 너희는 400년 전에 여기서 권율 장군한테 패배했듯이 또 망할 것이다 따라오면 계속 우린 여기서 만세운동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 횃불 시위는 비단 여기서만 있지 않았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 팀이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을 해봤습니다 횃불을 사용한 시위를 살펴봤더니 전국적으로 백16건이 확인됩니다 횃불 시위가 가장 먼저 시작된 충청도가 58건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경기도가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강원과 전라, 경상도는 상대적으로 시위 건수가 차이가 납니다 이 같은 결과는 지형적인 특성과 관계가 있다고 전문가는 분석합니다 [박찬승 /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 흔히 '비산비야'라고 하는데요 산도 아니고 들판도 아닌 충청도, 경기도 남부 일대처럼 얕은 야산밖에 없는 그런 지역은 횃불의 효과가 상당히 크거든요 불을 피우면 멀리서도 잘 보이고 ] 횃불 시위는 3월 중순부터 시작됐습니다 농민이 시위를 본격적으로 주도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해석됩니다 날짜별로 보면 4월 1일이 제일 많습니다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가장 시위가 활발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날이 저문 뒤에 벌인 산상 시위, 당시 횃불은 단순히 주변을 밝히는 의미 이상이었습니다 [이정은 /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 야간에 횃불을 드니까 수십 개 마을에 (빠르게) 연대가 된 것이죠 연대의 범위를 훨씬 더 넓힌 것이죠 ] 확성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횃불은 만세운동의 열기를 주변에 알리고 동시에 일제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이었습니다 YTN 이승배[sbi@ytn co kr]입니다 ▶ 기사 원문 : ▶ 제보 안내 : 모바일앱, 8585@ytn co kr, #2424 ▣ YTN 유튜브 채널 구독 :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