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 쩌는 람세스2세가 남긴 이집트 석굴사원의 걸작, 아부심벨 신전 1부

자기애 쩌는 람세스2세가 남긴 이집트 석굴사원의 걸작, 아부심벨 신전 1부

사막의 새벽을 달려 버스에서 내려서 아부심벨 신전으로 갑니다 저 앞에 보이는 언덕이 아부심벨 신전의 뒷편입니다 아부심벨신전은 돌산을 깎아서 만든 신전입니다 (스핑크스처럼 깎아만든 아부심벨 신전) 현재의 위치는 원래 신전이 만들어져 있었던 산의 꼭대기로 옮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4배속으로 30초간 걸어봅니다 (아부심벨 신전이 이전된 이유) 오른쪽으로 보이는 나세르호수가 시원해 보이네요 꼭 바다같이 넓네요 수평선이 보입니다 이 엄청난 수량이 나일강을 통해 하이집트로 흘러가겠죠 이 댐이 없었을 때는 나일강이 매년 범람해서 공급해준 비옥한 흙과 풍부한 수량이 경작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농사만 짓는게 아니잖아요? 전력이 필요하니, 수력발전이 있으면 좋았겠고요 농사도 예전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바뀌었고, 강변으로 넓은 공간도 확보해야하니,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넓은 댐이 꼭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침수된 문화재를 옮기는 작업이 필요했겠죠 우리나라도 이런 일이 많습니다 충주댐 같은 곳도 그렇고요 암튼 나일강은 진정 이집트의 축복인거 같아요 이 나세르 호수가 아스완하이댐의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죠 아스완하이댐으로 생긴 저 나세르호 때문에 아부심벨 신전이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고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제도의 시작, 아부심벨 신전) 세계유산제도의 시발점이 된 유적이라 그런지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아스완하이댐의 건설로 이 아부심벨 신전이 침수 위기에 빠졌는데, 이집트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죠 이에 유네스코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아부심벨 신전의 이전을 추진하게 됩니다 유네스코가 국제적으로 기금 활동으로 재원을 마련한 다음 1960년대 초부터 누비아지역에 전세계의 모든 이집트학자들을 다 투입시키죠 한국으로 치자면 구제발굴작업을 시작한 겁니다 먼저, 유적들을 조사하고 발굴하고 기록하는 그런 작업들을 했어요 그런 작업들을 토대로 대부분의 유적들이 수몰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유적들을 선별해서 이 유적들을 물리적으로 아예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합니다 그 과정에서 총 16개의 신전이 이전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이 아부심벨 신전이 가장 규모가 큰 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부심벨 신전은 흑백사진 속의 모습처럼 해체 후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서 침수되지 않는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됩니다 주목할 점은 이 아부심벨 신전의 조사 연구 이전작업을 시초로, 국제사회가 세계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진 유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사실이죠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시스템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문화유산이 이 제도에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부심벨 신전만 옮긴 것은 아니다) 특이한 점은 신전들 가운데 몇 개는 이집트가 유적구호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던 몇몇 국가들에게 줍니다 미국 뉴욕에 가시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있는 Temple of Dendur가 그렇고, 네덜란드 국립고대박물관의 타페신전같은 경우도 이전된 신전이고, 이탈리아 토리노의 엘리샤신전이 있고, 스페인 마드리드에도 신전이 하나 있고 이런 식으로 신전들을 선물해서 그 신전들이 지금은 유럽이나 미국에 복원된 상태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아부심벨 신전이 지어진 이유) 아부심벨 신전은 피라미드보다는 대략 1300여년 후에 지어진 신전입니다 기원전 1264년 정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약 20년에 걸쳐서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이 신전이 지어진 위치가 중요한데, 이곳은 전통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영역 밖이었습니다 나일강의 상류쪽에 있는 누비아 지역을 파라오들이 영토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하는데, 사실 누비아 지역은 이집트 문명이 탄생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이집트에게 착취당하고 관리받던 지역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누비아에서 금이 많이 나오고 그 금이 이집트가 갖고 있는 경제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누비아를 열심히 착취했던 것이죠 그랬던 누비아가 이집트가 종종 힘이 없어지면, 나름대로 독립된 왕국을 세워서 이집트를 공격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데 그런 역사적인 경험 때문에 신왕국시대가 되면 이집트 파라오들이 누비아 자체의 정치체를 완전히 말살시키고 누비와 이집트를 합병하는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작업들 중에 하나가 쉽게 말씀드리자면 일종의 문화통치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의 이데올로기를 누비아지역에 이식하는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들이 이집트 식의 신전을 누비아에 짓는 것입니다 특히 아부심벨 신전같은 경우, 나일강을 통해서 항해하는 모든 배들이 이 신전을 볼 수 있게끔 일종의 선전도구로 지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많죠? 대표적인 사례가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 있죠 아부심벨 신전은 암벽에 20m의 좌상들을 새기고 60m 깊이로 파서 만든 석굴사원입니다 정면 높이 32m, 너비 38m이며 입구는 22m입니다 (개코원숭이) 가장 상단부를 좀 봐주시면 저기 이상하게 생긴 존재들이 손을 들고 있어요 저것들은 개코원숭이입니다 신은 아니지만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반기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총 22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정 동쪽을 바라보고 있거든요 일출을 일찍 마주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파사드의 4인방) 그 앞쪽에 네 명의 사람이 앉아있는데, 모두 람세스2세입니다 쓰고 있는 머리 장식은 상하이집트의 이중 왕관이고 파라오들이 자주 사용했었던 네메스라고 하는 두건을 같이 쓰고 있으며, 이마에는 코브라를 달고 있고 가짜 턱수염을 달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파라오의 복식입니다 좌측에서 두 번째 석상의 상체부분이 훼손되어 있는데 최근에 훼손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신전이 운영되던 당시에 훼손된 것입니다 람세스2세 당시에 지진이 한번 있었는데, 그 지진에 의해서 저것이 무너진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 신전은 현대 학자들에게는 19세기 초반에 발견되었는데, 그때까지 거의 절반 정도의 높이까지 모래가 덮여 있었기 때문에 상태가 아주 좋은 편입니다 앉아있는 람세스2세의 좌상들 다리 사이사이에는 람세스2세의 부인이나 자식들의 모습이 작은 사이즈로 새겨져 있습니다 람세스 2세 상의 다리에는 누비아 원정을 떠난 그리스인 용병의 고대 그리스어 낙서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자기애 쩌는 람세스2세) 이 신전은 굉장히 람세스2세라고 하는 인물이 갖고 있는 개인 정체성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람세스2세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이거든요 자의식이 정말 과잉된, 자신감이 넘쳐 나는 굉장히 과장된 액션을 취하는 인물이었는데, 일단 람세스2세는 굉장히 오랫동안 재위에 있었습니다 약 66년 정도 재위에 있었고 사망 당시의 연령이 90세가 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상단부를 보시면, 매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존재가 서 있습니다 저 존재의 머리 위에는 원반이 달려있죠 저 존재는 태양신이에요 태양신 중에서도 아마 여러분들이 제일 잘 아시는 '라'입니다 호루스라고 하는 신과 합쳐져 있는 라호루스티라고 하는 신입니다 그냥 라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저 상이 라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람세스2세의 일종의 서명입니다 이집트의 파로오들은 총 다섯 이름을 갖게 되거든요 출생명, 즉위명, 네브티 이름, 호루스 이름, 황금 호루스 이름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출생명이고 여러분들께서 알고 계신 람세스라는 이름도 출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름이 즉위명인데, 즉위명을 포함해서 나머지 3개의 이름은 파라오로 즉위할 때 갖게 되는 이름이에요 파라오만 갖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람세스2세의 즉위명은 웃세르 마하트 라인데, 저상 자체가 그 이름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특히 이제 라 부분을 형상화 했는데 뜻은 라의 정의는 강력하다 라는 뜻인데, 일단은 제가 아까 저 상이 라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리고 저 라가 들고 있는 양손에 들고 있는 석물들을 봐주시면 왼쪽에 들고 있는 석물은 동물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지팡이같은 거예요 웃세르라고 불리는 형상이고 의미는 권력, 힘입니다 우측편에 들고 있는 저 석물은 여성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마하트의 상징입니다 마하트는 우주적인 질서, 정의 이런 것들을 뜻합니다 그걸 다 합하면 웃세르 마하트 라가 되는거죠 그러니까 람세스2세의 즉위명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자기의 이름을 표현한 사례는 유일합니다 람세스2세는 자기 이름을 너무 사랑했던 거죠 이집트의 유적을 여행하면서 계속 확인되겠지만, 자기가 만들어 놓은 기념물의 여기저기에 다 자기이름을 다새겨놓고요 굉장히 많은 기념물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기념물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람세스2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부심벨 대신전의 내부로 천천히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