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군 5사단, 6ㆍ25전쟁 화살머리고지전투 추모행사
[국방뉴스] 2020.06.08 #육군5사단 #화살머리고지전투 #김동희기자 육군 5사단, 6ㆍ25전쟁 화살머리고지전투 추모행사 6·25 전쟁 당시 1951년부터 휴전 협정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전투죠.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김동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에 있는 백마고지 전적지. 6·25전쟁에서 중부전선의 요충지인 강원도 평강과 철원, 강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대’ 를 차지하기 위해 임무를 완수했던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참석자들은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이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위훈을 기렸습니다. 선배 전우님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적이 도발하면 주저함 없이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춰 선배님들께서 온 몸 바쳐 지켜주신 대한민국을 반드시 수호하겠습니다.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1951년 말부터 1953년 여름까지 철원의 해발 281미터 고지에서 모두 4차례에 걸쳐 벌어진 전투입니다. 제 뒤에 보이는 건 백마고지 전적비입니다.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6·25전쟁 당시 우리 군이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52년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유엔군 프랑스 대대는 중국군의 공격을 막아내 고지를 사수합니다. 이듬해인 1953년에는 미 9군단과 국군 2사단이 중국군의 대규모 공세를 물리치고 화살머리고지를 지켜냈습니다. 1953년 6월 휴전협정 체결 직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벌어졌던 치열한 공방전에서 남측은 승리했습니다. 이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우리군은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1951년 20살의 나이로 육군예비사관학교 소위로 임관한 김면중 옹. 전쟁이 끝날 무렵에야 소위 임관장을 받았지만 오로지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임무를 다했습니다. 그땐 두렵다 뭐다 하는 것보다도 내가 내 가족들을 살리고 우리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어요. 현재 생존한 6·25 참전자들의 평균 나이는 90세. 1951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참전한 박성찬 옹은 지금 세대가 6·25 전쟁의 역사를 잊을까 두렵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6·25 참전자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얼마 안 남았죠. 숱한 전우들을 떠나보냈지만 마음처럼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관악산 전투 친구는 더군다나 옆에서 같이 지내고 자고 같이 생활한 오수훈이라는 전우가 아직까지도 마음에 많이 걸려요. 전사자들이 유해발굴을 하는 데 나타나서 나 여기 있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18년부터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발굴작전을 해온 육군 5사단. 올해는 159점의 유해와 1만 6천여 점의 유품을 발굴했습니다. 부대는 앞으로도 빈틈없는 군사대비태세를 갖추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방침입니다. 국방뉴스 김동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