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TV]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봐 불안합니다 | 시즌3 EP.18
#정혜신TV #정혜신 #당신이옳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봐 불안합니다 | 시즌3 EP 18 죽음은 줄곧 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너무 외로웠던 아동기에 부엌 가위를 목에 대고 엄마가 봐주기를 절규하며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책에 죽고 싶다는 말을 잔뜩 적어두고 보란 듯이 책상 위에 올려둔 적도 있습니다 그 시절 제게 죽음이라는 건 그저 가족을 위협하는 도구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이걸 몰라주다니’ ‘내가 죽어버리면 슬퍼하겠지 후회하겠지’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어 회고하듯 지난 시간들을 훑어보니 오래도록 많이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죽음을 습관적으로 꺼냈던 것이 원인이 된 건지 제 일상은 줄곧 죽음 바로 옆에 존재해 왔습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트럭이 날 들이받는 상상 버스를 타면 사고가 나서 버스가 전복되는 상상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에서도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상이 떠올라 불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돼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제가 아닌 가족에게로 옮겨가니 두렵게 되었습니다 고3 때 할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려 쓰러졌습니다 거의 매일 자전거로 동네 산책을 나가시던 건강하시던 분이고 집안의 낡은 물건들을 능숙하게 손봐 주셨던 누구보다 건강하던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신 일은 저희 집안 모두, 제 가슴속 깊은 곳에까지 풍파를 일으켰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맞벌이로 할아버지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 골머리를 앓으셨습니다 집안은 불꽃이 튀듯 삭막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모아둔 수면제를 30알 넘게 들이켜시고 응급실에 실려가셨습니다 아빠의 근심은 더해졌습니다 원래도 술을 매일 마시던 아빠는 그 이후로 술과 더 친해졌습니다 하루 세 병씩 술을 마십니다 제가 보는 아빠의 모습은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나 자는 모습 둘 중 하나입니다 아빠가 아주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잘 회복하셨습니다 다시 건강해 보이는 일상도 되찾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술을 달고 삽니다 담배도 그 이후에 더 늘어 거의 두 갑을 매일 피십니다 아빠의 늘어가는 기침소리에 저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면서 지금 이 모습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빠가 집에 혼자 있으면 제가 밖에 나갔다 오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편안하게 집을 나가지 못합니다 아빠가 그렇게 병약한 것이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아빠에게 서운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제가 하면 죄책감이 세차게 치밀어 오릅니다 집 밖에 나가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빠가 죽고 나면 분명 내가 이 순간을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저를 구속합니다 아빠가 웃는 얼굴을 봐도 그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언젠가의 미래를 상상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저를 집어삼킨 것 같습니다 몇 달 전 심리상담을 받아보면서 제가 아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편안하게 제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제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너무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_ "상처는 속마음에 꽁꽁 숨겨져 있다 드러내면 더 불리해지고 더 수치스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피해 경험 때문이다 상처를 꺼냈다가 차가운 무관심이나 예상치 못한 비난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깊숙하게 묻고 살지 않을 것이다 상처 드러내기와 관련해선 피해 의식이 아니라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150쪽 -------------------------------------------------------------------------------------- 📍 정혜신TV 시즌3에서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내 마음이 힘들 때' 정혜신TV 구독과 좋아요 클릭해주세요! ✔ 사연 보내주실 메일 주소 : cpr-119@naver com ✔ 정혜신TV 구독 : ✔ 당신이 옳다 페이스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