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양심]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양심적 타협안 _홍익학당

[3분 양심]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양심적 타협안 _홍익학당

- 홍익학당 네이버 카페 (191027 일요 대담) '에고'랑 얘기를 해 봐야 돼요 나 개인만 관련된 일이라 하더라도 내 '에고'가 납득해야 됩니다, 그 일이 아무리 자명해도 "이거 이렇게 하는 게 자명이지!"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자명하다고 하는데, 내 '에고'가, 희로애락이, "나 그러면 진짜 슬퍼서 죽어버릴 것 같아!" 그러면, '에고'도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게 지금 저한테는 더 자명한 거예요 그러니까, 완벽한 자명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참나의 속성에서의 자명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나는 중생심을 가진 존재거든요 그리고 내 '에고'가 살맛이 안 나 버리면 보살도를 할 수 없습니다 내 '에고'를 달래가면서 해야 돼요 그래서 내 에고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해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내 에고가 역량이 고 돼 있겠습니까? 변하지 참나랑 자꾸 일을 하다가 에고가 조금씩 역량이 더 커지면 더 큰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공부의 당연한 순서입니다 아무리 그 일이 자명해 보인다 해도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 따져 보시면, "가만있어봐 나 하나가 인류 중에 아무것도 아닌데, 나 하나를 죽여서 인류를 살린다면, 그것도 괜찮은 계산 아닌가?" 그런데 했다가, 괜히 생각해 봤다가, 속에서 '자명!' 떠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자명! "아, 내가 죽어야 되나?" 그러면 내 '에고'가 감당을 못하죠 말은 자명해요 나 하나의 희생으로 여럿이 살면 좋죠 그런데, '에고'가 "절대 못 간다!" 하고 딱 붙잡는 거예요 그럼 이때, "내 에고가 내가 자명한 일하는 걸 막네?" 이렇게 접근하셔야겠습니까? 아니면, "내 에고도 납득하는 수준에서 내가 자명을 행사하자!"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맞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가족들의 '에고'도 마찬가지예요 나랑 지금 공동운명체인데, 가족들의 '에고'가 못 받아들이고 힘들다고 하면, 물론, 너무 자명해서 내 가족들이 희생을 해서라도 이 일은 돼야 된다, 인류를 위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찜찜함은 안고 가야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찜찜한 일 한 것에 대해서는 가족들의 '에고'를 무시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는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될 정도로 큰일이, 독립운동을 해야 된다거나, 그런 큰일이 아니시라면, 가족들과 함께 갈 수 있는 타협 선을 찾아야 됩니다 그런 작업을 끝없이 하시면서, 명상을 하시면서 하다 보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좀 상처는 받더라도 납득할 만한 선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선을 찾아야 돼요 최저의 마지노선 같은 게 있어요 나도 살고, 가족도 살려면, 이 선 이상 더 내려가면 또 아니고 더 잘하자니 또 나만 좋고, 그런 어떤 선이 있겠죠? 그 선을 찾아내셔야 돼요 그런 걸 끝없이 찾아내는 게 자명한 것이지, "이 일은 자명해!" 하고 고정해 놓고 시작하시면 안 돼요 그런 식이면, 우리는 다, 제일 자명한 건 예수님처럼 살아야죠 우리가 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해결될까요? 예수님 수준이 아닌데? 똑같이 한다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걸 감당할 만한 그릇이 되시니까 하신 거예요 여러분은 역량을 키워가셔야 되는 겁니다 그럼 내 역량만 키울 게 아니라, 가족들의 역량도 커져야 되잖아요? 그러면 계속 기회를 주고 수작을 해 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금 막, "인류를 위해 너무 자명한데, 우리 가족이 막는다!" 그럴 때는 가족을 무시하고 해야 될 때도 있어요 진짜 그 정도의 일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인류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는 그런 자명한 일인지, 아니면 혹시 내 '에고'가 너무 그것을 원해서, 자명하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이것을 다 따져 봐야 돼요 그리고 진짜 자명하다면, 가족들의 양심에 호소해서 가족들에게 이해를, 양해를 한 번 구해 보시고 그리고 "도저히 이건 안 된다!" 하는 어떤 선을 가지고 타협을 서로 해보시라 끝없이 타협입니다, 보살도는 어렵습니다 그게 예술입니다 타협, 양심적 타협 뭐냐 하면, 이거예요 나 좋자고 하는 타협이 아니라, 진짜 '양심'을 하고 싶은데, 우리 가족들이 이 역량밖에 안 되니까 그러면 그것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이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심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보살도예요 그게 더 자명한 것이고 그런 타협안 그래서 당당해야 돼요 타협안을 찾아내고도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좀 더 한 걸음 나간 답을 찾았다 이런 자명함이 있어요 그러면 타협을 하고도 당당한데, 꼼수로 타협을 해 놓으면 찜찜하겠죠? "나 살자고 지금 양심을 굽혔다 " 이런 기분이 드시는 타협은 찜찜할 것이고 내 양에는 안 찼지만, 양심의 양에는 안 찼지만, "나랑 관련된 에고들이 좀 더 성숙할 수도 있는 기회를 좀 더 열었다 " 이런 것은 당당하겠죠? 하고도 뿌듯하겠죠?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거든요, 우리의 카르마는 카르마가 한 번에 바뀌겠습니까?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 업이, 좋은 업이 쌓이고 나쁜 업이 물러가면서 우리의 카르마가 바뀌죠 이것을 기본으로 아시고, 한 번에 기분으로 막 하시면 안 됩니다 - 홍익학당 페이스북 - 윤홍식 대표 페이스북 - 홍익학당 공식홈페이지 - 홍익학당 후원안내 - 홍익학당 후원계좌 국민은행 879601-01-245696 (흥여회) - 문의 : 02-322-2537 / help@hihd co kr 본 동영상은 흥여회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도와주신 '흥여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