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아침용)유교현판이야기 42편,영양 취수당 / 안동MBC
2018/09/09 09:04:03 작성자 : 보도팀 □ 취수당(醉睡堂) 유교현판 이야기: -오늘은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치욕스런 울분을 참지 못하고 세상을 피해 살며, 평생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킨 취수당(醉睡堂) 오연(吳演)선생이 영양군 청기면 청기리에 건립한 '취수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취수당'은 남한산성에서 치욕적인 조약이 맺어지자 오연 선생이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정자로, 대략 1640년경에 지었다고 합니다 오연 선생은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칼을 다루는 등 기개와 담력이 남달랐으며, 아울러 문학에도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음보(蔭補)로 내금위 선략장군(內禁衛宣略將軍)이 되고, 이어서 정략장군(定略將軍) 충무위(忠武衛) 부사과(副司果)에 올랐습니다 특히 병자호란 때 쌍령 전투에 나아가 적의 우두머리 2명을 활로 쏴 죽이고, 말을 빼앗아 타고 돌아오는 등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랑캐인 청나라에 나라가 멸망당하자, 그는 칼을 버리고 통곡하며 산으로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세상을 등지고 청기리에 살고 있던 표은 김시온 선생이 그에게 전장을 떼어다 주었고, 오연 선생은 이곳에 취수당(醉睡堂)을 짓게 됩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같을 뿐 아니라 뜻이 서로 맞아서, 아침저녁으로 만나 시를 읊조리는 등 의리로 맺은 고인(古人)들의 교제처럼 교분이 더욱 두터웠습니다 '취수당'에서 '취수'의 의미는 '술을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잠든다'는 뜻입니다 오연 선생이 술을 마실 때마다 거나하게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표은 김시온 선생이 '취수당'이라 명명해 준 것입니다 오연 선생의 이같은 행위가 단순히 술을 마셔 고주망태가 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시름, 즉 오랑캐인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술에 의지하여 잊으려 했던 것입니다 취수당'에는 '취수당' 편액을 위시하여 창석 이준, 표은 김시온, 석계 이시명, 석문 정영방 등의 시판이 걸려 있습니다 취수당 오연 선생은 병자호란 때는 몸을 바쳐 충성을 다했지만, 결국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하자 망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키게 됩니다 우리지역에는 17세기 전반기에 소위 '숭정처사'라고 불리우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추구한 고도의 정신세계를 오늘날 심도있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교현판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의 권진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