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양심] 중용(中庸) - 천하에 두루 통하는 길 _홍익학당.윤홍식

[3분 양심] 중용(中庸) - 천하에 두루 통하는 길 _홍익학당.윤홍식

- 홍익학당 네이버 카페 (190525 화엄경 초발심공덕품) 근본 원리가 우주의 중심이면, 실천 법칙은 현상계의 중심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실 때, "몰라!"하고 어느 순간에 여러분이 어떤 희로애락·탐진치 상태에 있건, "몰라!" 해 버리는 순간 어떻게 돼요? 우주의 중심과 통해버려요 치우치지 않은 우주의 중심 자리와 딱 하나로 계합합니다 거기서 뭐가 나와요? 지금 이 상황이 이게 자명한지, 저게 찜찜한지 파악이 됩니다 자, 그래서 자명한 것을 자명하다고 해버리면 어떻게 돼요? 시공 안에서 중심을 잡으신 거예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중심, 시공을 초월한 중심, 시공 안의 중심 그래서 『중용』책이 이것 다해서 그냥 가운데 중(中) 자 하나예요 중(中) 중용(中庸)이란 책 이름이요, 중화(中和)가 중용(中庸)이 아니고, 중화(中和)가 다 해서 중(中)이고, 용(庸)은 "평상시에 항상 쓰라!"는 거예요 "항상 중을 잡아라!" 해서 중용(中庸)이에요 그 중(中)을 잡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중(中), 희로애락이 없는 자리를 알아야 하고, 시공 안의 중(中), "희로애락을 쓸 때 양심에 알맞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써라!"가 이게 시공 안의 중(中)을 조화 화(和)라고 하는 거예요 "어디서든 중도를 걸어라!"라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중용의 중(中)이 불교의 중도(中道)랑 같냐, 다르냐? 유교 거니까 세속적이라서 불교의 중도만 못할 거라 하는데, 미안한데 초기 불교의 중도(中道)가 유교의 중용(中庸)을 다 포괄하지 못합니다 대승 보살도의 중도(中道)만이 유교의 중용(中庸)과 통합니다 아쉽게도 『니까야』에 나오는 모든 중도(中道)의 얘기가 보살도의 중도(中道)가 아니기 때문에, 열반에 들어가는 길의 중도(中道)이기 때문에, 출가자의 중도(中道)이기 때문에 감당을 못해요 『중용』에서 나온 중도(中道)가 훨씬 높은 가르침이에요 여러분!『중용』에 아공·법공·구공이 다 설명되어 있어요 아공(我空), "탐진치 있기 전 자리를 찾아라!" 거기가 중이다 시공을 초월한 중심 자리다 " 이게 열반 사상이지요 아공(我空) 법공(法空), "그런데 거기서 천하가 다 나왔다 " 왜? 그 중(中)이 천하의 뿌리라고 했으니까 천지 만물이 거기서 나왔다 법공(法空) 구공(具空), 거기에 인의예지신이 들어 있어서 본성만 잘 따르면, 그 길만 걸으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중도를 걸을 수 있다 도를 잘 걷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해요 도에 적중했다는 거 도에 딱 알맞게 적중해서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겁니다 중용 1장만 이해하시면 여러분, 대승불교 여기에 다 나옵니다 아공, 법공, 구공 그렇게 해서 양심이, 보리심이, 중생심을, 희로애락을 이기기만 하면 조화(和)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조화(和)는 뭐냐? 『중용』에 뭐라고 씌어 있습니까? 이 조화(和)라는 건 "천하에 두루 통하는 길이다 " 어디 가도 통하는 길이다 우주 어디를 가도, 육도 윤회 세계 어디 가도 통한다 이겁니다, 불교식으로는 유교식으로는요, "오랑캐 땅에 가도 통한다 " 이렇게 되어있어요, 『중용』에는 『중용』에서는 중국 사람들한테 설한 거니까, 중국 사람들 사고에서 제일 먼 데가 어디예요? 오랑캐 땅이요 "오랑캐 땅에 가도 통한다 " 이렇게 쓰여 있어요, 『중용』에 이 얘기는요, 외계인들하고 만나도 통한다는 거예요 어디 가도 통한다는 거예요 - 홍익학당 페이스북 - 홍익학당 공식홈페이지 - 홍익학당 후원안내 - 홍익학당 후원계좌 국민은행 879601-01-245696 (흥여회) - 문의전화 02-322-2537 본 동영상은 흥여회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도와주신 '흥여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