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남북경협 '옥동자'서 전면중단까지

개성공단, 남북경협 '옥동자'서 전면중단까지

개성공단, 남북경협 '옥동자'서 전면중단까지 [앵커] 북한의 연이은 무력 도발로 전면 중단된 개성공단은 한때 남북경협의 '옥동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며 살얼음판을 걸어왔지만 북한의 도발 속에 결국 전면중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개성공단의 역사, 송진원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인력과 토지를 결합한다는 구상으로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측이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시작된 개성공단 사업 2001년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듬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어 개성 공단의 첫 삽은 2003년 6월에서야 뜨게 됐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처음 생산된 제품은 시범단지에 입주한 주방기기 업체의 스테인리스 냄비 '통일 냄비'로 불린 이 냄비 1천 세트는 공장에서 출고된 당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이틀 만에 모두 팔리며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2006년 11월에는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1만 명을 돌파했고 이듬해 1월 말에는 누적 생산액 1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남북경협의 '옥동자'로 불리며 순항하던 개성공단은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부터 남북 긴장 관계에 따라 종종 논란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특히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른 정부의 5·24 대북제재 조치와 2013년 초유의 가동 중단 사태를 겪는 등 내내 살얼음판을 걸어왔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개성공단은 가동 10여 년 만에 누적 생산액 3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05년에 18개였던 입주기업은 현재 124곳으로 늘었고 운영 초기 6천 명 정도였던 북측 근로자도 5만 4천여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올들어 북한이 연달아 무력 도발을 강행하며 남북 관계가 급랭하면서 다시금 개성공단은 전면 중단의 운명에 처했습니다 연합뉴스TV 송진원입니다 연합뉴스TV : 02-398-4409(제보) 4441(기사문의), yjebo@yna co 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