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샘물✍ 2021.10.23.  ‘바나바’가 ‘권위자’이며 ‘위로의 아들’인 까닭은? 📖성경봉독: 신애라 집사 #long version

열두샘물✍ 2021.10.23. ‘바나바’가 ‘권위자’이며 ‘위로의 아들’인 까닭은? 📖성경봉독: 신애라 집사 #long version

열두샘물✍ 2021 10 23 바울의 선교사역이 바나바의 도움없이도 성공했을까? 📖 스가랴 1: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사도행전 9:11에 기록된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라는 말씀처럼 ‘다소(Tarsus)’ 출신의 ‘Sau[사울]’이 다메섹(Damascus) 도상(途上)에서 부름을 받고 기독교 교인으로 전향하여 주의 종이 된 후에도 한동안은 ‘사울’이란 이름으로 활약하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 받고 기독교회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가 되어 파송되어 간 곳, 곧 ‘구브로(Cyprus, 사이프러스)’ 섬의 ‘바보(Paphos, 파포스)’에서 전도할 때 사도행전 13:7에 기록된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는 말씀처럼 총독 ‘Sergius Paulus[서기오 바울]’을 만날 때만 해도 ‘Saul[사울]’로 칭해졌지만, 사도행전 13:9에 기록을 보면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란 말씀처럼 ‘Paul[바울]’로 개칭(改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 4:36에 기록된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 개정=위로의 아들)라 하니”라는 말씀을 보면, ‘바울’과 동행하였던 ‘Barnabas[바나바]’는 등장할 때부터 원래 이름은 ‘Joses[요셉, ιωσης]’이었지만, 사도들이 그를 칭하던 이름인 ‘Barnabas[바나바, βαρναβας]’로 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사도행전 14:12에 기록된 “바나바는 쓰스(개정=제우스, Jupiter)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개정=헤르메스, Mercurius)라 하더라”는 말씀처럼, ‘바나바’란 별칭이 그의 인품(人品), 또는 품격(品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점인데,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Gamaliel) 문하(門下)에서 실력을 쌓은 워낙 뛰어난 ‘능력자(能力者)’라서 아무나 닮아 갈 수 없지만, 고매한 인격의 ‘바나바’는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든지 닮아갈 수 있고, 또한 닮아 가야할 인성(人性)의 소유자란 사실이다 왜냐하면 로마서 8:29에 기록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주님을 닮아가야 하고, 성경의 인물들 중에 가장 주님을 빼닮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바나바’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좀 더 상세하게 언급하자면, 사람이 ‘본명(本名)’이든 ‘별명(別名)’이든 이름값에 걸맞게 사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은데, 사도들이 ‘구브로’ 출신의 ‘요셉’을 보니 누가 보아도 ‘바나바(*발음주의: 예수님 대신 풀려난 강도 ‘바라바’가 아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사도행전 4:36에서 개역 성경은 ‘바나바’를 ‘권위자’라고 번역했지만, 개정은 ‘위로의 아들’이라고 번역했는데, 흠정역은 ‘The son of consolation’으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consolation’의 뜻이 무엇이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무엇일까? 영어 ‘consolation’은 우리말로 ‘위로(慰勞)’ 또는 ‘위안(慰安)’이란 뜻이며, 헬라어는 성령님의 사역인 ‘위로’에 해당하는 ‘파라클레시스(Strong's G3874 - paraklesis, παράκλησις)’이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위로자)’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대로, 다른 ‘보혜사(위로자)’로 오신 성령님의 품성 중에 하나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위로’하시는 성품을 지닌 하나님이란 사실인데, ‘바나바’란 이름이 ‘위로의 아들’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의역(意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주요 사역 3가지를 다시 한 번 더 언급하자면, 첫째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성령님은 디모데후서 3:16에 기록된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개역, 개정=감동)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는 말씀처럼 대언자(히, 나비: Strong's H5030 - nabiy', נָבִיא)들에게 영감을 내려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두 번째는 주님의 약속대로 마가 다락방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후로는 고린도후서 13:13에 기록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란 말씀처럼 성도와 교통하시며, 세 번째는 고린도전서 3:16에 기록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말씀과 요한복음 14:16에 기록된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는 말씀에 따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신 ‘위로자(Comforter)’이시기 때문인데, ‘바나바(Βαρναβᾶς)’는 히브리어 “바( בַּר, H1247: 아들)”와 “나비( נְבִיא, H5029: 대언자)”의 합성어로서 엄밀히 말하자면 ‘대언자의 아들’이지만, 헬라어 성경은 히브리어 ‘바나바’를 의역(意譯)하여 ‘위로의 아들(υἱὸς παρακλήσεως)’이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설명을 종합하여 축약하면 대언자들을 통해 들려주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지켜 행하는 자가 ‘바나바’처럼 될 수 있다는 교훈임을 알고, 우리 모두는 ‘바나바’와 같은 인격(人格) 함양(涵養)에 매진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