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롯도(트롯. 트로트) ‘용두산 엘레지’[고봉산(高峰山) 노래. 1965. 아세아레코드(亞細亞 Record)]
도롯도(트롯 트로트) ‘용두산(龍頭山) 엘레지(elegie elegy)’[고봉산(高峰山) 노래 최치수(崔致守) 작사, 고봉산(高峰山) 작곡 유정걸(劉貞杰) 편곡⦁지휘 1965 아세아레코드(亞細亞 Record)] 【가사(歌詞)】 1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變)치 말자 한 발 올려 맹세하고, 두 발 디뎌 언약(言約)하던 한 계단(階段) 두 계단, 일백 구십 사 계단에 사랑 심어 다져 놓은 그 사람은 어데 갔나 나만 홀로 쓸쓸히도 그 시절(時節) 못 잊어 아아아아, 못 잊어 운다 2 용두산아, 용두산아, 그리운 용두산아 세월(歲月) 따라 변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냐 둘이서 거닐던 일백 구십 사 계단에 그리웁던 그 시절은 그 어데로 가 버렸나 잘 있거라, 나도 간다, 꽃 피던 용두산 아아아아, 용두산(龍頭山) 에레지[elegie elegy] 【주(註)】 • 용두산(龍頭山) = 부산광역시(釜山廣域市) 중구(中區) 광복동(光復洞)에 있는 산(山) ‘용두산’은 산세(山勢)가 마치 용(龍)이 머리를 들고 바다를 건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현재는 부산광역시의 도심(都心)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정상(頂上)까지 시가지화(市街地化)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나, 부산광역시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부산 탑[높이 120m]에서는 부산 시가지와 부산항을 조망(眺望)할 수 있으며, 주변(周邊)에는 ‘40 계단 문화관’⦁‘BIFF 거리’⦁‘광복동 패션 거리’⦁‘백산기념관(白山紀念館)’⦁‘부산 근대 역사관’⦁‘국제 시장’⦁‘용두산 미술의 거리’⦁‘보수동 헌책방 골목’⦁‘자갈치 시장’⦁‘용두산 문화의 거리’ 등이 조성(造成)되어 있어 풍부(豐富)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음 예전부터 짙은 곰솔[해송(海松)]들이 풍부(豐富)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고 하였음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초량소산(草梁小山)⦁송현산(松峴山)으로 일컬어졌고, 1876년 부산항(釜山港) 개항(開港) 후(後)에는 ‘소산(小山 )’⦁‘중산(中山)' 등으로 불렸음 ‘용두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78년 일본 자료(資料)인 조선귀호여록(朝鮮歸好餘錄)에서임 일제(日帝)는 1899년 산정(山頂)에 신사(神祠)를 크게 지어 '용두산신사'라 칭하면서 용두산이란 이름이 통용(通用)된 것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 이 일대(一帶)는 일본인 거리로 바뀌었으나 광복(光復) 이후(以後) 일제가 만든 신사가 헐려 없어졌고, 6·25 이후 부산에 밀려든 피난민(避難民)들의 판자촌(板子村)을 이루기도 했으나, 1954년 12월 10일에 일어났던 큰 불로 피난민 판자촌이 거의 다 불타 없어진 뒤 그 일대가 정리(整理)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 1957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大統領)의 호(號)를 딴 우남공원(雩南公園)으로 불리다가, 1960년 4·19 이후 다시 용두산공원(龍頭山公園)으로 환원(還元)됐음 • 에레지 = ‘엘레지’의 일본식(日本式) 잔재(殘滓) ※ 엘레지([프랑스어] elegie [영어] elegy) = ① [문학] 서정시(抒情詩)의 일종(一種)으로 애도(哀悼)와 비탄(悲嘆 悲歎)의 감정(感情)을 표현(表現)한 시(詩) 영국(英國)의 셸리(Percy Bysshe Shelley), 밀턴(John Milton), 테니슨(Alfred Tennyson) 등의 작품(作品)이 유명(有名)함 ② [음악] 슬픔을 노래한 악곡(樂曲)이나 가곡(歌曲) [유의어(類義語)] 비가(悲歌) 애가(哀歌) • 맹세하고 = ‘맹서(盟誓)하고’의 변(變)한 말 약속(約束)이나 목표(目標)를 꼭 실현하겠다(고) 다짐하고 • 어데 = ‘어디에’준말 • 그리움던 = ‘그립던’의 운율적(韻律的) 구사(驅使) • 어데로 = ‘어디에로’의 준말 또는 ‘어디로’의 비표준어(非標準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