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병시절 208- 동계훈련 5 우리 중대장의 마지막 배려 (2사단, 노도부대, 32연대, 스키대대, 양구, 구암리, 소양호, 군대이야기, 군복무담, 전술훈련, 사명산,)

나의 일병시절 208- 동계훈련 5 우리 중대장의 마지막 배려 (2사단, 노도부대, 32연대, 스키대대, 양구, 구암리, 소양호, 군대이야기, 군복무담, 전술훈련, 사명산,)

나의 일병시절 208 혹한기 동계훈련 5 우리 중대장의 마지막 배려 정식으로 동계훈련이 시작 된 1월 26일 화요일 첫날 야간 교육은 주간에 교도훈련을 한 대로 매복훈련을 했습니다 사실 매복은 목진지에 들어가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수류탄과 화기를 준비한 채 꼼짝 않고 기다리는 것이 훈련의 전부이므로 그리 특별히 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혹한의 날씨라 겨울에 매복을 나가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중대의 매복진지는 선정사 뒤쪽으로 올라간 사명산 골짜기였습니다 낮에 와서 청소했던 지정된 교통호에 들어갔는데 너무 추워 앉지도 못하고 서서 종종걸음만 쳤습니다 이렇게 몇 시간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그런데 30여분이 지나자 중대로부터 무전이 왔습니다 “현재 시간으로 상황 종료하고 은밀하게 숙영지로 복귀하라 이상 ” 다른 중대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 중대장은 추위에 떨고 있는 부하들에게 융통성을 발휘하여 숙영지로 복귀시킨 것입니다 우리들은 즉시 장비를 챙겨 기도비닉을 유지하면서 텐트로 돌아와 그대로 잠을 잤습니다 이후에 매일 같이 진행 된 야간훈련도 거의 이런 식으로 중대장은 우리들에게 융통성을 발휘하여 힘들지 않게 했습니다 다음날인 수요일은 야간방어 주간교도훈련 후에 야간 방어를 했고 목요일에도 야간공격 주간교도훈련 후에 야간공격 훈련을 했지만 사실 흉내만 내는 정도였습니다 특히 28일 목요일 야간 공격은 아예 중대장의 이론교육만으로 대신할 정도였습니다 다만 대대본부에서 들리도록 공격하는 함성만 몇 차례 지르도록 했습니다 동계훈련답게 기온이 급강하하여 날씨가 너무 추웠습니다 사명산 중턱에 위치한 산악훈련장은 날씨도 훨씬 춥고 바람도 매서웠습니다 큰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곳곳에는 잔설이 쌓여있어서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러져 다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앞도 보이지 않는 오밤중에 야간 공격을 한다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중대장이 융통성을 발휘해 준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중대장의 배려로 인해 우리들의 동계훈련은 그리 힘들지 않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중대장이 이번 훈련에서 이렇듯 배려하는 이유를 그 당시에는 잘 몰랐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우리 사병들을 잘 이해하고 시의적절하게 지휘권을 발휘하는 중대장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어렴풋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한 달 뒤에 중대장이 새로운 보직을 받아 이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중대장 임기가 보통 18개월 정도였는데 우리 김철곤중대장은 만 12개월 만에 이임한 것입니다 그것도 2군단 군수사령부로 가게 되었으니 영전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지난해 우리 중대의 육본교육사열 결과가 좋아서 중대장이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임이 확정된 중대장이 마지막 야전훈련인 동계훈련에서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하여 우리들에게 다소나마 보답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악훈련장에 있는 동안 우리 분대에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산악훈련장에 도착한 다음날인 1월 26일 우리 분대 2총 탄약수인 김OO일병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관보를 받은 것입니다 아마 전부터 몸이 안 좋으셔서 편찮으신 모습을 보고 입대했다는데 결국은 돌아가신 것입니다 경북 경산이 고향인 김일병은 1957년생으로 나이가 우리들보다 많았지만 무슨 일인지 늦게 입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철을 다루는 일을 했다는데 키도 크고 체격이 쩍 벌어진 대장부였습니다 성격도 좋아서 나이어린 고참들에게 군기를 잡혀도 한 번도 개기거나 대들지 않고 몸으로 오롯이 감당하는 그였습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듣고 큰 눈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며 뭐라 위로를 할지 몰랐습니다 겨우 군장을 꾸려 주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만 해줄 뿐이었습니다 우리분대장이 그를 데리고 자대로 복귀했다가 다음날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금 같으면 차량으로 금방 이동했겠지만 그때는 자대까지 걸어가서 연대에서 휴가증을 받았을 때는 날이 저물어 당일로 내려가지 못하고 다음날 출발해서 내려가야 했으니 그가 장례식에 맞춰 도착했을지 의문입니다 그것도 27일부터 29일까지 겨우 3일간의 위로휴가이니 경산까지 가서 장례만 치르고 당일에 바로 되돌아와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뜻하지 않은 비보에 모두들 가슴아파했고 김일병이 잘 이기고 무사히 복귀하기만을 기원할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