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지나도…이름 없는 ‘3.1 운동 순국자’ / KBS뉴스(News)

100년이 지나도…이름 없는 ‘3.1 운동 순국자’ / KBS뉴스(News)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3 1운동 기념식에서 '만세운동으로 7천5백여 명이 숨졌다'고 말했죠 일본 정부가 사망자 수가 다르다며 부적절한 언급이라고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오히려 가해자가 항의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데 KBS가 취재해보니까, '이름없는 3 1운동 순국자'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젭니다 김덕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아흐레 만에 경기도 양평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한 달 뒤, 곡수장터엔 무려 3천 명이 모였습니다 장날이었습니다 헌병들이 총을 쐈고 2명이 숨졌습니다 [길영배/양평군 곡수리 이장 : "각지에 살던 분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또 구속돼서 (광복 이후) 독립운동 유공자가 되기도 "] 일제가 파악한 양평의 3 1운동 순국자는 11명 하지만 서훈된 사람은 고작 3명뿐입니다 곡수리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호승 선생 헌병들에게 붙잡혀 총살됐지만 주민들의 증언만 있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복재/경기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보훈처에서 증언만 가지고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관심을 미리 좀 가졌다면 많은 분이 서훈될 수 있었고 아마 더 많은 내용이 밝혀졌을 텐데 "] 만세운동 열기는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까지 확산됩니다 4월 9일 강원도 양양군 기사문 마을 시위 모두 9명이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광영/양양군 향토사연구소 연구원 : "(조선 민중) 천여 명이 진행을 하는데, 계속 진행하다 보니까 발포가 시작돼서 "] 5명은 훈장을 받았지만, 4명은 서훈이 보류됐습니다 역시 증거 부족이었습니다 18살 때 숨진 문종희 선생도 그런 사례입니다 후손들이 뒤늦게 족보에서 3 1운동 순국 사실을 발견해 정부에 서훈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문종기/문종희 선생 사촌동생/1937년생 : "다행히 가승(족보)을 어른들이 만들어 놨어 (어른들이) 잊어먹지 말고 보관해라 (문종희 선생) 산소를 어디에 썼다는 것도 다 여기 읽어보면 (있어) "] 일제강점기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이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한 3 1운동 순국자 수는 7,500여 명,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조선 소요사건 일람표'에선 553명으로 집계했습니다 그런데 3 1 운동 순국자로 서훈을 받은 사람은 311명에 불과합니다 일제가 파악한 사망자보다 242명이나 적습니다 투옥이나 재판 기록이 없는 3 1 운동 순국자들은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핑계 속에 일제가 스스로 인정했던 사망자 553명의 신원조차 모두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덕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