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특별기획 - 3.1의 여인 윤형숙 전도사

3.1절 100주년 특별기획 - 3.1의 여인 윤형숙 전도사

06 0702 CTS뉴스는 3 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3 1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와 지역, 단체들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남 여수지역에서 일제의 탄압에 맞서 3 1 운동에 앞장선 한 여성을 소개합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신앙을 바탕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한 윤형숙 전도사의 발자취를 서새롬 기자가 따라가 봤습니다 전남 여수시 화양면 이곳엔 2004년 건국포장에 추서된 순국열사 윤형숙 전도사의 묘가 있습니다 이곳을 찾은 윤 전도사의 후손들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그녀의 공적을 되새겨봅니다 INT) 윤치홍 사무총장 / 여수독립유공자유족회 1900년에 태어나 7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미국 선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았던 윤형숙 전도사는 18살의 늦은 나이에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여수와 순천, 광양지역에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중 발각돼 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독립 염원의 뜻이 있었던 시민들은 광주로 모여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평소 학교에서 선교사들에게 ‘하나님 사랑과 민족사랑’을 배웠던 윤형숙 전도사는 1919년 3월 10일 광주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앞장섰습니다 INT) 윤치홍 사무총장 3 1운동 이후 불구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윤형숙 전도사는 여수제일교회, 여수중앙교회 등에서 사역하며 문맹퇴치운동, 남북통일과 공산당의 잔학상을 전하는 등 개인의 이익보다 민족과 이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INT) 김성천 목사 / 여수제일교회 1950년 6 25 전쟁당시, 인민군에 ‘반동분자’라 낙인찍힌 윤형숙 전도사는 손양원 목사를 비롯한 약 200여명과 함께 인민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INT) 윤치홍 사무총장 3 1 만세운동과 6 25 전쟁을 거치며 누구보다 격정적인 삶은 살아온 윤형숙 전도사 그녀의 삶은 하나님 사랑, 그리고 나라와 민족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CTS뉴스 서새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