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100주년 특별기획 - 기독애국인물과 항일운동 l CTS뉴스, 기독교뉴스, 교계뉴스
#3 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 앵커 : 3 1운동 100주년 cts뉴스 특별기획시간입니다 1919년 3월 1일 평양일대에서 일어난 3 1운동을 주도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있습니다 앵커 : 평양 산정현교회를 담임했던 강규찬 목사와 당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었던 김선두 목사의 민족독립을 위한 활동을 취재했습니다 최대진 기자입니다 평안북도 선천 출신으로 선천 신성중학교에서 봉직하면서,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자로 활동했고, 1917년부터 1933년까지 평양 산정현교회를 담임했던 강규찬 목사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돼 이승훈, 양전백 등과 함께 투옥, 2년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191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로 시무하며, 복음의 열정, 남다른 민족애, 탁월한 목회 리더십으로 산정현교회를 평양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발전시켰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일대의 3 1운동을 주도했다는 구실로 투옥됐으며, 숭덕학교 교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격려연설 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체포, 다시 2년간 복역했습니다 3 1독립운동의 참여와 출옥 후 대사회적 민족적 책임 구현을 통해 진정한 기독교 민족애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고, 김동원과 조만식 같은 민족지도자들을 배출해 평양 산정현교회를 기독교 민족주의 요람으로 만들었습니다 int 박용규 교수 / 총신대 총장직무대행 민족을 가슴에 품었던 지도자 강규찬 목사는 광복을 4개월 앞둔 1945년 4월 9일 71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91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7대 총회장이었던 김선두 목사 평안남도 대동 출신으로 27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 평양 숭실전문학교와 평양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지 5년 만인 191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7대 총회장에 피선됐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평양지역 조선독립선언식의 사회를 맡고 기독교인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3 1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경은 평양일대 3 1운동을 주도했다며, 김선두 목사를 투옥했습니다 int 박용규 교수 / 총신대 총장직무대행 이후 1938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차 총회를 앞두고 일제의 탄압을 받자 그는 일본기독교계의 협조로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궁내부대신, 국회의원, 일본육군대장 등을 찾아가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입장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기독교인들로부터 협조의 언약을 받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체포되어 개성경찰서에 수감됐습니다 석방되자 곧 만주로 망명한 그는 만주신학원, 즉 봉천신학교에서 박형룡, 박윤선 등과 같이 신학교육에 전념했고, 광복 후 지병으로 1949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3 1운동이 일어났던 당시 평양일대에서 3 1운동을 주도했던 강규찬 목사와 김선두 목사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믿음의 선진들의 애국심과 신앙심이 우리사회와 한국교회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cts뉴스 최대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