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23.05.07 뼈들(예레미야 8:1-3)

오후23.05.07 뼈들(예레미야 8:1-3)

뼈들 2023년 5월 7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8:1-3 (8: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8:2)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8:3)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잔인한 세상 전쟁의 양상, 상대를 심하게 굴욕감과 모욕감을 안겨주는 것으로 자신의 전쟁 피로감을 달래서는 시도가 이 인간 세상 전체에 퍼져있습니다 이는 전쟁을 통해서 인간들은 어떤 보상을 얻고자 하는 겁니다 자기만 살아야 정의요 타인이 잘 살면 용서가 안되는, 인간 내면의 불안정을 전쟁을 통해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세상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할지라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 전쟁 방식에 내맡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난 날의 조상님까지 묘가 모독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런 식으로 몰아세우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에게만 율법을 주입시켰기 때문입니다 즉 율법이 있어주어야 인간은 자신의 본질에 접촉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을 전쟁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 도달점은 ‘뼈’입니다 모든 인간은 결국 뼈로 환원되어야 합니다 일상 상활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왜 일상은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 접근을 가로막는 겁니까? 그것은 율법의 방향성을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기쪽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그 어떤 경우라도 자신이 멀쩡하다고 자부하고 그 멀쩡한 자신이 자기의 본질이라고 우기고 삽니다 이를 위하여 인간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타인을 본인이 골라 만나게 됩니다 이런 해ᅟᅦᆼ위들이 과오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어떤 미국 사람이 군인으로서 아프리카에 가서 착실하게 맡은 군 복무를 합니다 나이들어 군대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싶어서 그는 퇴역하고 본토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본인이 아프리카에서 병원균을 갖고서 들어온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 집에 살다가 그만 어린 자기 딸이 그 병원균에 의해 병 걸렸습니다 희귀병이라는 치료비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근처 은행에 대서 대출을 받고자 했으나 은행 지점장은 담보없이는 대출 못한다고 했습니다 젊은 날을 나라 위해 희생했건만 본국으로부터 어떤 혜택이 받지 못하게 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는 총을 들고 그 은행을 털기로 합니다 무사히 은행돈을 털고 나오는데 성공했지만 그동안 바닥에 엎드려 있던 그 지점장이 종들고 이 강도를 막아섭니다 이 퇴역 군인은 어쩔 수 없이 이 지점장을 죽이고 맙니다 원치 않게 살인을 한 겁니다 이 퇴역군인은 탄식합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 퇴역 군인이 자신이 원하는 타인들만 골라 만난 겁니다 즉 그는 율법을 정면으로 만나지를 못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에게 도움되는 사람만 만나는 것으로 자기 인생 설계를 갖추어나가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이방나라, 곧 인간 세계의 실정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이 통째로 이방나라에 유린되게 하십니다 이 유린의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이 경험할 수 없는 중차대한 경우를 접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는 뼈이다”는 겁니다 곧 이스라엘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 곧 죽음을 접하게 합니다 이처럼 내가 죽는 이유를 밝혀주는 분이 진정한 타인이요 이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사람이 죽는 것은 율법을 위반해서 저주받아 죽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은 안 죽는 수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이 주어진 이상, 이스라엘은 인간들의 끝장을 드러내야 하는 겁니다 율법의 맞이한 결말들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한 예언으로 전달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 37:1-5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최종으로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인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 에스겔의 뼈 골짜기에는 뼈들은 그냥 잠잠히 있습니다 뼈가 스스로 살기 위해 적절한 타인을 골라서 상담을 받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뼈는 바짝 말라있으며 자기를 살기 위해 그 어떤 시도도 뼈에 부적절합니다 대화는 하나님과 ‘인자(人子)’라고 불리는 에스겔 선지자 사이에만 이루어집니다 뼈는 이 두 분의 대화의 결과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습니다 뼈들은 자신의 결말에 대해서 본인들이 어떤 식으로도 개입될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인간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율법을 제거해 버립니다 율법이 들어가게 되면 율법은 예언을 고대해야 하고 그 예언 달성에는 인간의 소망이 끼어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이 빠져버리면 남는 것은 타인과 타인 사이의 힘 겨루기만 남아 있게 됩니다 착실하고 건실하고 바르고 살고 싶은 것이 인간들입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 세상이 굳이 살아야 되는지 모호합니다 이유없는 삶, 목적으로 모르는 인생, 상황 따라 주어지는 질서의 원친은 과연 어디일까요?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지정해 놓았다는 겁니다 율법에 의해서 모든 인간은 결국 하나님을 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 십자가 사건의 중력에 의한 그물구조망 안에 모든 인간들이 다 갇혀 있습니다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게 살든지 인간은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위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군말 못하고 뼈들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 인간의 운명은 자기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십자가 지신 예수님 손에서 놀아납니다 바로 인간들의 현 세계는 이런 복음을 가리고 감추고 핍박하는데 급급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모두 엉터리입니다 죽어있으면서, 혹은 죽어가면서도 율법과 예언과 말씀과 십자가를 쳐다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뼈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고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