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시가선] 당시,왕창령의 "규원"_#당시 #규원 #왕창령 #당시감상 #당시삼백수 #동양고전 #역대시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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閨怨… 王昌齡 "규방의 젊은 부인 근심이란 몰랐더니, 봄이라 화장을 하고 취루(翠樓)에 올랐다가, 홀연히 길가 버드나무 봄색깔 보고 나서, 남편에게 벼슬자리 찾아 떠나보낸 일 그제야 후회하네 " 【凝妝】정성들여 머리 빗고 나들이 화장을 함 【翠樓】비취빛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누각 【陌頭】길가 【覓封侯】밖에 나가서 제후로 봉을 받을 훌륭한 업적을 쌓거나 공부를 더 할 것을 권하여 찾아 나섬 뒷날의 영화와 부귀를 위해 신혼의 달콤함도 희생하였음을 말함 ★ 참고 및 관련 자료 1 왕창령의 대표적인 閨怨詩로 널리 애송되고 있음 2 淸 李鍈의 ≪詩法易簡錄≫에 “寫閨中嬌憨之態如畫”라 함 3 韻脚은 ‘愁, 樓, 侯’ *왕창령(王昌齡, 698년 ∼ 756년)은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사람이다 자(字)가 소백(少伯)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5년(727)에 진사(進士)에 급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