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패러디의 실례, 시 쓰기, 시 창작, 시 해석, 시 해설

8-3) 패러디의 실례, 시 쓰기, 시 창작, 시 해석, 시 해설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 方 / 백석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 方」 부분 /// 그리운 여우/ 안도현 눈은 지지리도 못난 삶의 머리끄덩이처럼 내리고 여우 한 마리가, 그 작은 눈을 글썽이며 그 눈 속에도 서러운 눈이 소문도 없이 내리리라 생각하고 나는 문득 몇 해 전이던가 얼음장 밑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 동무 하나가 여우가 되어 나 보고 싶어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어제껴 보았던 것인데 눈 내려 쌓이는 소리 같은 발자국 소리를 내며 아아, 여우는 사라지고 여우가 사라진 뒤에도 눈은 내리고 또 내리는데 그 여우 한 마리를 생각하며 이렇게 눈 많이 오시는 날 밤에는 내 겨드랑이에도 눈발이 내려앉는지 근질근질거리기도 하고 가슴도 한없이 짠해져서 도대체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안도현, 「그리운 여우」 부분 /// 엇시조를 위하여 / 전기철 도시로 온 비둘기 한 마리가 자장면을 배달한다 오토바이도 없이 어깨에 자장면 네 그릇을 얹어 기우뚱거리며 비탈을 올라가는데 세끼 머슴이 무거운 짐을 지고 대문턱을 오르듯, 몰래 애 밴 처녀가 가랑이 벌이고 걷는 듯, 할멈에게 쫓겨난 영감이 지팡이 짚고 유람하듯, 바람난 아가씨가 택시 타고 도망치듯, 쐐쐐쐐 달려가는 폼이 영락없는 초란이라 비둘기는 지뚱지뚱, 비탈을 타고 오르며 가슴에 담긴 면발 하나 자꾸자꾸 꺼내 만져 본다 몇 개의 면발이 비둘기의 가슴에 묻어가는 길을 외줄로 만들었구나 면발 위에서 비둘기의 걸음은 빨라지고, 아슬아슬, 지뚱지뚱, 날개를 펴면 가슴에서 면발이 얼굴을 내민다 밤이면 주방장이 비둘기를 위해 만들어준 면발들은 철가방 같은 비둘기의 가슴을 꽁꽁 묶는다 잘린 발목을 위하여, 꽁꽁 묶는 어머니를 위하여 ― 전기철, 「엇시조를 위하여」 전문 /// 주기도문, 빌어먹을 / 박남철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주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하지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벼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 박남철, 「주기도문, 빌어먹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