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패스티쉬와 메타시, 시 쓰기, 시 창작, 시 해석, 시 해설
/// 가난 / 문병란 논 닷 마지기 짓는 농부가 자식 넷을 키우고 학교 보내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가 우리는 다 안다 집 한칸 없는 소시민이 자기 집을 마련하는 데 평생을 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네 명의 새끼를 키우고 남 보내는 학교도 보내고 또 짝을 찾아 맞추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뼈를 깎는 아픔인가를 새끼를 키워 본 사람이면 다 안다 딸 하나 여우는 데 기둥뿌리가 날라가고 새끼 하나 대학 보내는 데 개똥논이 날라간다 하루 여덟 시간 하고도 모자라 안팎으로 뛰고 저축하고 온갖 궁리 다하여도 모자란 생활비 새끼들의 주둥이가 얼마나 무서운가 다 안다 그래도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가? 쑥구렁에 옥돌처럼 호젓이 묻혀 있을 일인가? 그대 짐짓 팔짱 끼고 한눈파는 능청으로 맹물을 마시며 괜찮다 괜찬다 오늘의 굶주림을 달랠 수 있는가? 청산이 그 발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키울 수 없다 저절로 피고 저절로 지고 저절로 오가는 4계절 새끼는 저절로 크지 않고 저절로 먹지 못한다 지애비는 지어미를 먹여 살려야 하고 지어미는 지애비를 부추겨 줘야 하고 사람은 일 속에 나서 일 속에 살다 일 속에서 죽는다 타고난 마음씨가 아무리 청산 같다고 해도 썩은 젖갈이 들어가야 입맛이 나는 창자 창자는 주리면 배가 고프고 또 먹으면 똥을 싼다 이슬이나 바람이나 마시며 절로절로 사는 무슨 신선이 있는가? 보리밥에 된장찌개라도 먹어야 하는 사람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 사람은 밥 앞에 절을 한다 그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전 우주가 동원된다고 노래하는 동안 이 땅의 어느 그늘진 구석에 한 술 밥을 구하는 주린 입술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결코 가난은 한낱 남루가 아니다 입었다 벗어버리는 그런 헌옷이 아니다 목숨이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 물끄러미 청산이나 바라보는 풍류가 아니다 가난은 적, 우리를 삼켜버리고 우리의 천성까지 먹어 버리는 독충 옷이 아니라 살갗까지 썩어 버리는 독소 우리 인간의 적이다 물리쳐야 할 악마다 쪼르륵 소리가 나는 뱃속에다 덧없이 회충을 기르는 청빈낙도 도연명의 술잔을 흉내내며 괜찮다 괜찮다 그대 능청 떨지 말라 가난을 한 편의 시와 바꾸어 한 그릇 밥과 된장국물을 마시려는 저 구린 입을 모독하지 말라 오 위선의 시인이여, 민중을 잠재우는 자장가의 시인이여 ― 문병란, 「가난」 전문 /// 텍스트로서의 삶 / 이승훈 나는 없고 언어만 있으니 나라는 언어가 나를 만든다 이 글 이 텍스트 이 짜깁기 언어라는 실과 실의 얽힘 속에 양말 속에 편물 속에 스웨터 속에 당신의 스타킹 속에 내가 있다 나는 거기 있는가? 내가 거기 있다고? 글쎄 난 그것도 모르고 거울만 보며 쉰이 넘었다 망측스럽도다 거울만 보며 쉰이 넘었다 망측스럽도다 거울만 바라보며 세월을 보낸 내가 갑자기 망측해서 주먹으로 한 대 갈기고 이 글을 쓴다 이 글 속에 이 언어 속에 마무 것도 없는 언어 속에 부재 속에 무 속에 내가 있도다 ― 이승훈, 「텍스트로서의 삶」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