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법문] 견성- 내가 나를 보다 _홍익선원.윤홍식

[3분 법문] 견성- 내가 나를 보다 _홍익선원.윤홍식

(170111 수밤대담) 내 마음에 뭐가 나타나건 참나의 작용이라는 것을 정확히 아시고 왜 참나의 작용이냐? 이게 ‘나’잖아요 나라는 존재감 없이 생각이나 감정, 오감이 존재할 수 있냐는 거죠 이것들은 다 나한테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괴롭다 ’ 괴롭다는 것이 왜 예전 어른들이 그게 실체가 없다고 하냐면 ‘괴롭다’라는 놈이 ‘나’라는 주어가 없이 술어가 존재할 수 있냐는 거죠 내가 있으니까 괴로운 것이거든요 이 괴롭다는 것도 뭐에 의존해 있어요? 나라는 존재에요 ‘슬프다’도 ‘나’라는 존재에 (의존해 있어)요 괴롭다, 슬프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오감, 모든 것들이 이 촉감마저도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내 마음에 이 촉감이 어떻게 존재하냐는 거예요 내가 없는데 촉감이 있을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이 이걸 빼놓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온이 허상이다’ 이런 얘기할 때도 ‘나’라는 것을 빼놓고 오온의 허상을 얘기하면 다 허망한 말장난으로 돌아갑니다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오온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오온이라는 존재는 다 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고정된 실체가 없다 이 얘기는 뭐냐? 나의 작용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나를 뭐라고 해요? 대승불교에서 ‘공’이라고 하는 거죠 이 자리는 생각, 감정, 오감이 아니라 텅 빈 자리거든요, 시공도 초월해서 그러니까 공성의 작용이라는 거예요 나라는 존재가 애초에 우주에는 시공을 초월한 이 존재가 있기 때문에 시공 안에서 생각, 느낌, 감정들이 존재할 수 있다 성경에서 모세가 여호와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물어보니까 여호와가 뭐라 그래요?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 누구로 인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나는 그냥 나다 ’ 그래요 이게 뭐냐면 이 주어 자리가 하나님 자리예요, 나다 신약성서에서도 예수님이 ‘I AM’이라는 것을 되게 중시해요 이게 유대교에서 신의 이름이에요 여호와가 ‘I AM’이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도 설명할 때 ‘I AM’이란 말을 계속 써요 나의 현존을 뜻해요 그런데 단순히 나의 현존이 아니라 신을 뜻해요, 예수님의 말에서도 ‘신’, 신은 그냥 주어 자리예요, 현존자리 여기에 뭐가(괴롭다, 슬프다) 붙어버리면 작은 자아의 작용으로 변해요, 상황이 여러분이 존재할 때 순수하게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내가 나만 보고 계시면 이게 견성자리죠 견, 누가 봐요? 내가 보죠 성, 뭐를 봐요? 내 본성을 보죠 내가 나를 보고 있으면 그게 견성이에요 거기에 남이 들어오면 나 아닌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현상계가 펼쳐져요 생각, 감정, 오감이 나타나요 이건 나 아닌 것들이에요 순수한 나인 것, 내가 나인 것만 보고 계시면 여러분이 우주 전부가 돼요 그래서 명상을 하다가 참나를 보면 내가 우주라는 것을 그냥 느낌으로 알아요 온 우주에 나만 있다는 걸 알아요 왜냐? 내가 나만 보고 있으니까 상상을 해보세요 내가 나만 보고 있으면 거긴 남이 없겠죠 내가 우주의 전부가 돼요 내가 신이고 내가 우주가 돼요 이게 가능해요 만물은 다 가능한데 이걸 생각을 통해서 의식을 거기로 몰고 가야 가능하니까 인간만이 하는 거죠 동물 중에도 혹시 하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어요, 좀 영특한 존재가 결국, 어떻게 하면 하느냐? 자기의식을 돌이켜보는 존재들은 견성을 할 수 있어요 누구나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존재들은 - 홍익학당 네이버 카페 ( - 홍익학당 페이스북 ( - 홍익학당 후원하기 국민은행 879601-01-245696 (흥여회) - 문의전화 02-322-2537 본 동영상은 흥여회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도와주신 '흥여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