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읽어주는 감성서신 #50] 고상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행복하다 죄악에도 쾌락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고귀함은 죄악의 쾌락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고귀함은 고상한 즐거움을 목표로 살아가는 데 있다 돈버는 것도 재미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즐거운 것이다 성공과 성취에도 기쁨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고 싶은 욕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정작 원하는 것을 소유했을 때는 더 깊은 세계를 추구한다 조금 더 고귀하고, 고상한 삶을 추구한다 단순한 물질적인 부유가 아니라 차원 높은 부유를 추구한다 내적인 부유와 존재의 넉넉함을 추구한다 코코 샤넬은 “세상에는 돈을 가진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참된 부유함의 정의를 물질의 부유함이 아니라 존재의 넉넉함으로 본 것이다 부유함은 소유의 많음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나누었느냐에 따라 측정된다 소유했지만 나누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반면에 얼마를 가졌든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다 진정한 부유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눔에 있다 세네카의 말처럼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다 가난해도 천해지지 않고 비굴해지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고상함의 척도는 소유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고상한 즐거움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이 고상한 즐거움이다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즐기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다 둘째,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 고상한 즐거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해, 그분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사 11:3)라고 예언했다 예수님의 즐거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었다 셋째,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인해 즐거워하는 것이 고상한 즐거움이다 하박국이 그런 사람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 18) 비록 생활이 어렵고, 환경이 고통스러워도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아직도 멀긴 했지만 나도 그런 고상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