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부전선 지연전 4편, 단양 남한강 공방전, 국군10연대 1대대 북한군12사단 전방지휘소 기습, 육군본부 원주 탈환 명령
8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김용배 중령의 21연대를 단양읍-현천리-심곡리-고음동-기촌리-고수리에 이르는 남한강 남안의 약 10km 정면에 배치하고, 고근홍 중령의 10연대는 사단예비대로 지정하여 단양 주변의 경계임무를 부여했습니다 21연대는 이창률 소령의 3대대를 서쪽의 324고지-현천리에, 최취성 대위의 1대대를 중앙의 슬금산-고음동-664고지 서쪽 능선에, 박영섭 대위의 2대대를 동쪽의 644고지-기촌리-고수리에 각각 전개했습니다 이 무렵 청풍 부근으로 북한군 일부가 침입했다는 현지 경찰의 정보보고를 받고 김성빈 대위의 2대대 7중대를 급파해 사단의 서측방을 엄호하게 했습니다 10연대는 단양역전의 동굴에 지휘소를 개설하고 하병래 소령의 3대대에 단양 외곽 방어를 맡기면서 주력은 단양국민학교에서 전투태세를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8사단은 개전 이후 6사단과 더불어 건제를 유지한 부대였지만, 애초 2개 연대로 구성된 작은 사단이었던 데다가 초기 전투에서 발생한 인명손실로 인해 전투력이 약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8사단은 제천에서 사단과 함께 남하한 1,000여 명의 청년방위대원들과 학생들을 충원하여 전투력을 보강했습니다 7월 6일 오후 4시에 제천을 점령한 북한군 12사단은 계속 남진하여 같은 날 오후 8시에는 하리, 매우, 별곡리 지역의 남한강 북쪽 강변까지 진출했습니다 처음 도착한 북한군 선발대가 도하를 시도했으나 국군의 저항에 막혀 성공하지 못하자, 북한군 12사단은 7월 7일부터 8일까지 국군 방어진지 파악을 위한 정찰을 실시하면서 도하를 준비했습니다 6 25전쟁에 대한 많은 영상이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 조차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도 조차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형편입니다 6 25전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참전했던 국군과 미군의 회고록, 미국 논픽션 전쟁사 작가의 간행물, 중공군 참전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가장 정확한 6 25전쟁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6 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상처를 남긴 채 종전이 아닌 휴전의 형태로 정지된 비극적 전쟁입니다 자유진영 전사자는 한국군 149,005명,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40,306명 등 189,311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산진영은 북한 294,000명, 중공 197,653명, 소련 315명 등 491,968명이 전사했습니다 6 25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을 포함하여 5,991,48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5,991,484명의 희생자 중 5,218,480명이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인명 피해로만 본다면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려-몽골 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외전쟁을 합친 것 보다 많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 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참고자료] 6 25전쟁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 25전쟁 주요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 25전쟁영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군의 한국전쟁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낙동강(류형석, 플래닛미디어), 6 25전쟁 징비록(백선엽, 책밭),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권주혁, 지식산업사), 6 25전쟁과중공군(박실, 정미디어), 6 25전쟁(존 톨랜드, 바음),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헬버스템, 살림), 이런전쟁(T R 페렌바크, 플래닛미디어), 6 25전쟁에서의 소부대 전투기술(러셀 구겔러, 북갤러리), 중국군의 한국전쟁사(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한국전쟁(왕수쩡, 글항아리),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학지, 한국학술정보), 항미원조(리펑, 다른생각) [영상 출처 : 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