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신동욱 앵커의 시선]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신동욱 앵커의 시선]

경북 영양 주실마을은 한양 조씨 집성촌입니다 큰 시인, 올곧은 학자 조지훈이 태어난 종갓집 정면에 붓처럼 끝이 뾰족한 문필봉이 솟아 있습니다 그 기운을 받았는지 일흔 가구 마을에 교수 열넷, 교장 열아홉이 나왔습니다 집안 가훈은 "재물, 사람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 비굴하게 머리 숙이지 않고 꼿꼿하게 살자는 다짐입니다 주실마을이 낳은 원로 역사학자 조동걸이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하던 중학생 때 일입니다 트럭을 얻어 타고 고향 가는 길에 운전사를 따라 여관에 묵었다가 돈이 없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른이 되자 여관비를 갚으러 여러 번 찾아갔지만 옛 여관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중환을 앓던 여든세 살에 그곳 면장에게 50만원을 보내 동네 여관들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한 뒤 세상을 떴습니다 수치심과 죄의식, 자존감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마음의 기둥입니다 부끄러움이란, 자존심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말입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소됐습니다 검찰에서 가장 막중하고 막강한 조직의 수장이 법정에 서는 초유의 일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검찰의 꽃' 이라는 서울중앙지검의 2백일흔 명 검사들이, 수사방해 혐의를 받는 형사 피고인의 수사지휘를 받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오늘 본인이 관련된 사건 수사에 대해 회피 신청을 해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셈이지만 바꿔 말하면 다른 사건은 계속 지휘하겠다는 뜻입니다 즉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 겁니다 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남은 방법은 인사조치뿐입니다 하지만 박범계 법무장관은 "기소된다고 다 직무배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미리 보호막을 둘러쳤습니다 말단 공무원도 기소되면 일단 직무에서 배제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 지검장은 한 술 더 떠 유임과 승진 가능성이 거론되는 지경입니다 고백과 성찰, 구도의 시인이 부끄러움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인간 양심의 증표요 인간 구원의 싹수다" 아무리 수치를 모르는 난세라곤 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마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5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이었습니다 [Ch 19] 사실을 보고 진실을 말합니다 👍🏻 공식 홈페이지 👍🏻 공식 페이스북 👍🏻 공식 트위터 * 뉴스제보 : 이메일(tvchosun@chosun com), 카카오톡(tv조선제보), 전화(1661-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