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중비사] 궁녀들의 문제가 정쟁의 씨앗이 된 홍수의 변

[조선궁중비사] 궁녀들의 문제가 정쟁의 씨앗이 된 홍수의 변

#조선궁중비사 #궁녀 #홍수의_변 #김우명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 #삼복형제 #숙종 #명성왕후 #송시열 #김상업 #귀례 #환관_김현 #조희맹 #상궁_윤씨 #허견 #허적 궁녀들은 흔히 ‘붉은 옷소매’를 뜻하는 홍수(紅袖)로 불렸는데 궁녀들 중 나인들은 옷소매의 끝동에 자주색 물을 들이고 상궁들은 남색 물을 들인바, 홍수는 주로 전자를 가리켰습니다 조선 숙종 대에 일어난 ‘홍수의 변’도 궁녀들과 관련된 사건이었는데 인조의 손주이자 인평대군의 아들인 복창군 이정, 복선군 이남, 복평군 이연, 즉 삼복(三福) 형제가 궁녀와 연분을 맺고 임신까지 시킨 사건이었습니다 효종은 삼복 형제를 몹시 총애했고, 현종도 사촌들인 이들을 동기간처럼 대한 덕분에 삼복 형제는 궁궐을 어렵지 않게 출입할 수 있었고, 궁녀들과도 깊은 교분을 쌓았습니다 얼핏 보면 홍수의 변은 왕족이 궁녀를 건드린 단순한 사건 같지만, 사실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힌 당쟁의 결과였습니다 이 사건은 숙종 1년인 1675년 3월 12일, 숙종의 외조부인 청풍부원군 김우명이 차자를 올리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당시 숙종의 나이는 15세였고, 즉위한 지 불과 7개월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해 수렴청정을 받지 않고 친정을 해서, 모후인 명성왕후 김씨의 간섭이 심했는데 심지어 편전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신하와 임금이 나누는 말을 엿듣고 정사에 관해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했습니다 서인 세력이었던 친정 집안을 비호하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남인들은 이를 두고 극렬히 비판했습니다 숙종은 남인들의 비판을 받아들여 모후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명성왕후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김우명이 차자를 올려 삼복 형제를 고발한 것입니다 김우명이 삼복 형제를 고발한 이유는 그들이 숙종의 신임을 받는 데다 남인들과 친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삼복 형제가 남인 출신인 외숙 오정위와 오정창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남인만 가까이한 것은 아니었는데 삼복 형제 중 복창군은 김우명의 조카사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김우명도 한때 남인들과 친했는데 서인이었지만 영수였던 송시열과 권력을 다투는 사이였기 때문에 남인들과 손잡고 송시열을 견제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복창군이 김우명에게 큰 힘이 되어주기도 했으나 사사로이 국정에 개입하던 명성왕후가 남인들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리자, 김우명도 남인들에게 칼끝을 겨누면서 삼복 형제를 공격했습니다 김우명의 차자에 따르면, 삼복 형제가 궁녀를 건드리기 시작한 시기는 현종 대부터였다고 합니다 세 형제 중 복선군은 여인에게 관심이 적은 대신 술을 즐기는 쪽이었고, 복평군과 복창군이 나인 김상업과 귀례를 함부로 건드려 임신시켰는데 김상업은 군기시의 서원 김이선의 딸이었고, 귀례는 내수사의 비자였습니다 숙종은 즉시 영의정 허적과 오정위 등을 불렀는데 허적은 삼복 형제와 나인들의 일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했고, 승지 정중휘는 궁궐 내부의 일이므로 외신(外臣)들이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