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한국사 111회] 고창전투 이후 견훤의 분노 신검의 운명은? feat 신라 사녀들이 왕건에게 반한 이유

[팩 한국사 111회] 고창전투 이후 견훤의 분노 신검의 운명은? feat 신라 사녀들이 왕건에게 반한 이유

929년 12월부터 930년 1월까지 진행된 고창전투는 경상도 패권을 다시 왕건이 가지게 되는 결정적 전투가 되었다 이에 영안(永安)·하곡(河谷)·직명(直明)·송생(松生) 등 30여 군현(郡縣)이 서로 차례로 투항해왔다 (고려사 930년 1월 25일 (음) 경인) 이때에 신라의 동부 해변의 주군(州郡)과 부락(部落)이 모두 투항해왔는데, 명주(溟州)부터 흥례부(興禮府)까지 모두 110여 성이었다 (고려사 930년 2월 1일 (음) 을미) 신라의 경순왕은 견훤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왕건이 고창에서 큰 승리를 거두자 이제 때가 되었다 싶었다 "우리는 고려와 손을 잡을 것이다 사신을 보내어 고려 왕을 초청하고 극진한 예로 맞이할 것이다" 신라는 태수 겸용을 보내 서로 만날 것을 요청하였다 왕건이 이 일을 두고 신하들과 의논했다 "신라왕이 짐을 만나고 싶어 한다 무슨 뜻이겠는가?" 최응이 말했다 "신라는 과거 견훤이 경애왕을 자결케하고 왕후를 겁탈한 사건에 매우 분노하며 이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고창전투에 승리하시어 동쪽을 편안케 하였으니 신라로서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백제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 왕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초청에 응하여야지 그리고 짐은 견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줄 필요가 있어!"